한국에 체류하면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테러 자금을 지원한 우즈베키스탄 국적 난민 신청자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는 아프리카 우물 사업에 지원한다는 명목의 모금 활동을 통해 가상화폐 약 10억원을 모아 이 중 일부를 테러단체에 이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는 테러방지법·테러자금금지법·기부금품법·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우즈베키스탄 국적 A씨(29)를 구속해 수원지검에 송치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아프리카 우물 사업을 추진하는 자선단체 ‘Y’ 지원을 명목으로 가상화폐 USDT(테더) 62만6819개(검거일 시가 기준 9억5276만원)를 불법 모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렇게 모은 가상자산 일부를 하마스의 가상화폐 지갑으로 이체한 혐의도 받는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이슬람주의 정당이자 준군사조직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등에서 테러단체로 지정한 상태이다.
A씨는 2018년 3월 유학생 비자(D-2)로 입국해 2023년 3월부터는 난민 신청 자격으로 한국에 체류해왔다. 전문대를 다니다 중퇴한 A씨는 일상생활에서는 수도권 내 풋살장에서 일하며 아프리카 우물 사업에 대해 홍보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했으나, 인스타그램 등 SNS상에는 “알라신이 원하신다면 이슬람에 반대하는 모든 것과 싸우자. 알라신을 위해 우리 같이 지하드(성전)를 하자”는 선동 구호를 올리면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전파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2022년 3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첩보를 입수해 A씨의 국내 활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경찰은 A씨의 가상자산 송금 내역에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새로 업데이트한 하마스의 가상화폐 지갑 주소가 포함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16일 A씨를 체포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테러 자금 지원 혐의로 수배된 신분으로, 본국 국가안전부의 추적을 받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2022년 8월 여권 무효화 조치로 인해 한국 체류 자격에 문제가 생기자 난민 신청을 3개월씩 11차례에 걸쳐 연장하면서 범행을 지속하다가 최근 들어 경찰에 꼬리가 잡힌 것이다.
A씨는 UN 지정 테러단체인 KTJ(카티바 알타우히드 왈지하드) 추종자로도 확인됐다. 옛 알카에다 시리아지부 ‘자바트 알누스라’의 전투부대인 KTJ는 2014년 시리아 정권 타도와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결성됐다. 2016년 주키르기스스탄 중국대사관 자살 폭탄테러와 201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폭탄테러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A씨는 8개 SNS 계정에 이슬람 난민 사진을 올려놓고 은행 계좌 이체와 신용카드 결제 방식을 통한 모금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운영하는 축구 동호회를 중심으로 자국 출신 회원을 상대로도 모금 활동을 벌였다.
경찰은 가상자산 전문 추적 도구 등을 통해 분석한 끝에 A씨가 모금한 USDT 62만6819개를 확인했다. 검거일 기준 단가 1520원으로 계산하면, 한화 9억5276만원에 달한다. 경찰은 “국내에서 밝혀진 테러 자금 모금 규모로는 사상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또 A씨가 모금한 가상자산 중 한화 약 2700만원 상당이 하마스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는데, 이 역시 테러 자금 지원 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자선단체를 가장한 테러 자금 조성은 국제사회가 경계해 온 고전적인 수법”이라며 “피의자가 추가로 모금한 가상자산이나 현금이 더 있는지 수사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어 “수일 앞으로 다가온 경주 APEC 회의와 관련한 잠재적 위험 가능성에 대해서도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덧붙였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