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본질 잃었다” 가락재포럼, 한국교회 ‘질적 위기’ 진단

입력 2025-10-27 15:27 수정 2025-10-27 18:19
27일 경기도 가평 가락재영성원에서 열린 제1회 가락재 포럼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곳곳이 노랗게 물든 푸른 산 너머로 맑은 가을볕이 가락재영성원 예배당의 통창 너머로 쏟아졌다. 건물 외벽은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었고 꼭대기에는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똑같은 독특한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둘의 무게가 같다는 것을 상징하는 십자가다.

27일 경기도 가평 가락재영성원 예배당에서 열린 제1회 가락재 포럼에서 ‘성찰과 외침’을 주제로 한국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진단이 나왔다. 기조 강연자로 나선 양혁승 전 연세대 교수는 “한국 교회의 위기는 단순한 외형의 쇠퇴나 숫자 감소의 문제가 아니다. 본래 목적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직시해야 하는 질적 위기”라고 진단했다.

양혁승 전 연세대 교수가 27일 경기도 가평 가락재영성원에서 열린 제1회 가락재 포럼에서 ‘한국 교회의 질적 위기’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이번 포럼은 정광일 원장과 한국일 장신대 명예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는 가락재 코이노니아가 올해 종교개혁주간을 맞아 처음 마련했다. 3년 전 은퇴 목회자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비공개 토론 모임에서 쌓인 그간의 성찰을 공개적으로 나누자는 취지에서 열게 됐다. 이날 포럼에는 작은 교회 목회자 50여명이 초청됐다.

양 전 교수는 교회의 질적 위기가 여러 원인이 누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사람 경영’ 전문가이자 거룩한빛등대교회 장로인 그는 먼저 신앙과 생각을 분리한 문제를 짚었다. 양 교수는 “‘생각하지 말고 믿으라’는 분위기가 질문과 성찰을 위축시켰다”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유 능력을 통해 성경 계시의 지평을 더 깊고 다양하게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성경을 이해하는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광일 가락재영성원 원장이 27일 경기도 가평 영성원 건물 앞에서 포럼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건물 외벽은 담쟁이덩굴로 덮여 있고 지붕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그러면서 “교회 운영이 세속적 조직 논리를 따르면서 목회자는 CEO처럼, 성도는 자원처럼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담임목사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는 성도 각자의 의견을 모으는 공론장을 사라지게 하고, 성도를 수동적이고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양적 성장 집착과 소비주의가 신앙을 상품화하고 성도를 소비자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대안으로 논찬에 나선 한국교회생태계연구네트워크 대표인 한경균 목사는 개교회주의를 넘어선 ‘생태계’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 교회’ 성장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에서 한국 교회 전체를 생태계로 바라보고 서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순 미가교회 목사는 “기존 교회들이 자원을 활용해, 실패를 감수하며 새로운 실험을 하는 이들을 품어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락재영성원 마당에 세워진 ‘쉄’ 표지석(왼쪽 사진)과 영성원의 정신을 담은 글귀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자신을 돌아보며’.

포럼이 열린 가락재영성원 마당 바위에는 ‘쉄’ 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쉄은 이곳의 영성을 한글로 푼 쉼과 숨 그리고 섬을 한 글자로 합친 것이다. 정 원장은 “섬은 멈춰섬이자 일어섬이고 이상향”이라며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자신을 돌아보고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가락재 코이노니아 총무 이효재 목사는 “한국 교회에 작은 변화라도 넓게 퍼지게 할 수 있게 역할을 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 공론장에 꺼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평=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