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와 완주의 행정통합 논의가 행정안전부의 주민투표 지연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4번째 도전인 이번 통합 시도는 완주군민 6000여명이 서명한 통합 건의서가 지난해 지방시대위원회에 제출되면서 10년 만에 공식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주민투표 실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 절차상 행안부는 주민투표를 권고하거나 두 지자체의 의회 의결을 거쳐 통합 여부를 확정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27일 전북도에 따르면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24일 대한민국 사회적경제박람회에 참석을 위해 전주시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주·완주 통합과 관련해 주민투표 시기를 포함해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이어 “전주·완주 주민들의 의견뿐 아니라 출향 도민들의 의견도 들었다”며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일정이나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지역에선 “결단을 미루다 또다시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안부는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부담과 완주 지역의 반대 여론이 얽히면서 판단이 늦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주시와 찬성시민단체 측은 “광역행정 효율화와 도시권 경쟁력 강화의 계기”라며 “조속한 주민투표 권고안이 나와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완주군의회와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전주 중심의 흡수 통합”을 이유로 주민투표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완주지역 단체 한 관계자는 “통합이 되면 전주에 행정과 재정이 쏠려 농촌 지역의 자립성이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역 내부의 의견 대립이 좁혀지지 않자 중앙정부는 정치적 부담 속에 결단을 미루는 분위기다. 행안부가 투표를 강행했다가 낮은 투표율이나 반대 결과가 나오면 네 번째 통합 시도 역시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일정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합 주민투표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실시될 경우, 결과에 따라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반대 여론이 높은 완주 지역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올 경우, 정부 여당이 ‘지역 민심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북 정치권 한 관계자는 “찬성률이 낮거나 투표율이 미달되면 정부로선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지역 이슈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정무적 판단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완주 통합이 현실화되면 인구 73만명, 면적 1027㎢의 대도시가 탄생한다. ‘인구 중심 특례시’가 아닌 ‘기능 중심 특례시’로 지정될 가능성도 높다.
이 경우 도시계획·건축·환경 등 광역시급 행정권과 복지급여 결정권, 국책사업 제안권이 확대돼 전북의 정책 자율성과 재정 집행 능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인구소멸 위기를 겪는 전북의 현실에서 기존 행정체계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운영이 어렵다”며 “행정통합은 단순한 구역조정이 아니라 전북의 백년대계와 직결된 과제”라고 말했다.
전주=최창환 기자 gwi122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