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동남아 국가들과 연이어 무역 협정을 타결했다. 미국은 중국과도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역 합의를 위한 ‘프레임 워크’를 마련하면서 무역 전쟁 확전이 수습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첫날부터 무역 협정 타결을 발표하면서 3500억 달러(약 500조원) 투자 방식을 두고 진통 중인 한·미 무역 협상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백악관은 이날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과의 무역 합의 공동성명을 릴레이로 발표했다. 말레이시아·캄보디아와는 상호무역협정 합의, 태국·베트남과는 상호무역협정 ‘프레임워크’ 합의로 명시했다. 무역협정 합의는 내용이 구체적이고 자세한 반면, 프레임워크 합의는 상대적으로 기본적인 원칙과 내용만 담겼다.
가장 상세한 합의는 말레이시아와의 협정이었다. 미국이 말레이시아에 19%의 상호관세율을 유지하는 대신 말레이시아는 향후 10년간 미국에 7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자동차와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해소하기로 했다. 또 말레이시아가 미국에 주요 광물이나 희토류에 대해 수출을 금지하거나 할당량을 부과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미국이 중국의 희토류 통제에 맞서기 위해 동남아 국가와 협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태국도 19%의 상호관세율를 적용받는 대신 188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항공기 80대를 구매하기로 했고, 캄보디아는 19%의 상호관세에 미국 항공기업 보잉과 협력해 자국 항공 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베트남도 20%의 관세를 유지하는 대신 미국산 농산물 등 수출품에 대해 비관세 장벽을 해소하기로 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와 미국의 100%추가 관세 예고로 긴장이 고조되던 미·중 무역 전쟁도 정상 회담 직전 대략적인 내용에 합의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이날 미·중 무역 협상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양국 정상들이 논의할 매우 성공적인 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양국 정상들이 검토할 만한 성과를 도출할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베선트 장관은 특히 이날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1년간 유예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미국도 중국에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베선트는 NBC방송에서 미국이 중국에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100% 관세 부과를) 예상하지 않는다”며 “중국이 논의했던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가 일정 기간 유예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30일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열 예정이다. 회담에 앞서 실무 협상팀의 조율이 마무리된 만큼 두 정상이 관세와 희토류, 미국산 대두 구입 중단 등을 둘러싼 무역 전쟁에서 휴전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아직 미국과 문서화된 무역 협정을 타결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지난 24일 아시아 순방을 출발하며 에어포스원(대통령전용기)에서 한국과의 무역 협상에 대해 “타결에 매우 가깝다”며 “그들(한국)이 준비되면 나도 준비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이 공을 돌리며 협상 타결을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29일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