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에도 감성 바람이 불고 있다. 문제의 답을 도출하거나 정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것 외에 ‘감성 지능(EQ)’을 높인 모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AI가 사람답게, 친근하게 느껴질수록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AI 모델의 성능을 평가하는 지표 역시 ‘감성’이 대세가 될 만큼 필수 요소로 자리잡는 상황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24일 자사 AI 서비스 ‘MS 코파일럿’을 대표하는 캐릭터 ‘미코’를 공개했다. 3D 아바타 형태의 미코는 맥락에 맞게 얼굴 표정과 색상을 바꾸는 등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기 기억 기능을 탑재해 과거에 나눴던 대화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MS 측은 “사용자가 슬픈 얘기를 하면 금세 미코의 얼굴이 슬퍼진다”며 “미코는 단순한 정보 도우미가 아니라 ‘디지털 친구’로서 설계됐다”고 강조했다.
MS의 목표는 AI를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MS는 과거에도 사람과 소프트웨어의 상호작용을 전략으로 내세운 바 있다. 1997년 후반 MS 오피스의 ‘길잡이 캐릭터’로 등장한 클리피와, 애플 시리의 대항마로 2014년 공개한 1세대 가상비서 ‘코타나’가 대표적이다. 두 서비스 모두 당시 이용자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AI 기술로 탄생한 미코는 MS의 철학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카카오의 AI 메이트 서비스 ‘카나나’ 역시 친근함을 무기로 한다. 개인 메이트 ‘나나’는 일대일 대화와 단체 대화방을 오가며 정보를 기억해두었다가 사용자에 꼭 맞는 답변을 제공한다. 귓속말 기능을 통해 그룹 대화방에서도 동료와 속삭이듯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룹 메이트 ‘카나’는 단체 대화방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방에서 오간 대화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원활한 소통을 돕는 매니저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카나나에서 운영되는 ‘프로야구 편파중계’ 그룹방 경우 카나가 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 및 분석해 팬들이 경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이처럼 AI가 무섭게 발전하며 사람과 소프트웨어가 나누는 정서적 교감은 점차 완전한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비영리 AI 연구 단체 라이온은 인텔과 협력해 감성 지능 구축에 필요한 오픈소스 모델과 도구 모음 ‘이모넷’을 지난 6월 출시했다.
이모넷에는 40개에 달하는 정교한 감정 분류체계가 적용돼 이를 이용한 AI는 사용자의 미세한 기분 변화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 모델의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 ‘벤치마크’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기존에는 모델의 추론과 상식, 언어이해력, 환각방지능력 등을 평가하는 허깅페이스 ‘H6’ 지표가 대표적이었다면, 최근에는 감성 평가 지표인 ‘EQ-벤치’가 활발하게 활용되는 추세다.
소비자 역시 AI와의 감정 교류에 열려 있다. 앱 데이터 분석 업체 앱피겨스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AI 컴패니언(인간과 정서적 교류가 가능한 AI 기반 시스템) 앱 시장 규모는 올해 말까지 1억2000만달러(1727억원)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2025년 7월 기준 AI 컴패니언 앱은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를 합쳐 누적 2억2000만회 다운로드됐다. 2025년 상반기 다운로드 수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88% 증가한 6000만건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