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야, 고맙다’ 증시 상승 숨은 공신… “인플레이션 우려 낮춰”

입력 2025-10-26 06:00

올해 들어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글로벌 증시 상승의 ‘숨은 공신’이 됐다. 이달 들어 미·중 무역갈등과 사모 신용 부실 위험 등 악재가 발생했지만, 증시는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사상 최고치 수준을 유지 중이다. 낮은 유가가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를 잠재우면서 시장이 인공지능(AI) 투자 열기와 금리 인하 사이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25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따르면 전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2월 인도분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0.57% 내린 배럴당 61.4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의 대형 석유 기업을 상대로 제재를 가하면서 최근 급등했지만, 여전히 올해 들어 약 14% 하락한 수준이다. 이달 중순에는 내내 배럴당 60달러선 아래에서 거래되면서 연저점(57.1달러) 수준에 근접하기도 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아래에서 거래된 적은 5개월 만이다.

올해 국제 유가는 주요 산유국의 증산으로 공급 과잉 우려로 하락 추세를 보여 왔다. 유가 하락 추세는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를 낮춘다는 측면에서 증시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원유는 원자재 운송과 제조, 전력 등 산업의 기초 비용이다. 유가가 오르면 기업의 생산비용이 늘고, 이는 최종 소비자 가격에 반영된다. 국제통화기금(IMF)는 WTI 기준 배럴당 10달러 변동만으로 인플레이션이 0.3~0.4% 포인트 움직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다면 시장에서 증시 상승 핵심 요인으로 꼽았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타격을 받게 된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는 수요 개선보다는 공급에 차질이 생길 때 오른다”며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과 긴축 압력이 발생한다면 주식시장에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유가가 소폭 반등하는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요보다는 공급이 많은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내년 6월까지 하루 평균 320만배럴의 초과 공급을 예상했다. 미국 내 일부 프로젝트에서 원유 생산량이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석유수출기구(OPEC)+ 의 증산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단기 변수는 미국의 러시아 석유 제재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23일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대형 석유 기업 두 곳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도와 중국의 주요 정유사들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국제유가는 5% 이상 급등했다. 유럽연합(EU)도 22일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금지 조치 등을 포함한 러시아 제재 패키지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OPEC이 추가 공급을 할 가능성이 있어 상승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쿠웨이트 석유장관은 “OPEC은 시장 공급 부족에 대응해 감산을 철회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광래 삼성선물 수석연구위원은 “OPEC은 이번 러 제재 여파에 따라 추가 증산 가능성도 열어둔 상황”이라며 “미국의 대러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OPEC 산 원유에 대한 수요가 단기적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