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영(62) 한국장기기증협회장은 1990년대 초 장기기증이 낯설던 시절부터 34년간 생명 나눔의 씨앗을 뿌려온 ‘한국 장기기증 운동의 개척자’다. 그는 모태신앙인으로서 “예수를 팔지 말고 하나님을 바로 믿어야 한다”는 신조를 생명 나눔으로 실천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행동하는 신앙인의 본을 보여주고 있는 강 회장을 지난 21일 부산 부산진구 한국장기기증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강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깊은 신앙적 영향을 받으며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는 39세에 장로 임직을 받은 후 수원 흰돌산기도원에서 윤석전 목사를 만나 신앙의 결정적 전환점을 맞았다. 강 회장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생명나눔운동에 부르셨다고 믿는다. 그의 삶의 좌표는 언제나 예수 중심,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령 충만이다.
그의 사역은 1992년 부산에서 시작했다. 당시 장기려 박사와 김용태 부산시 약사회장 등 33명의 인사들과 함께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부산본부’를 창립해 장기기증 운동의 첫발을 내디뎠다. 강 회장은 장기이식을 ‘신앙의 순종’으로 여겼으며 ‘한 사람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는 신념으로 생명 나눔을 시대적 사명으로 확신했다. 그는 장기기증을 단순한 인도주의적 활동이 아니라 복음 전도의 통로로 봤다.
1990년대까지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적 관념이 강했다. 이 때문에 장기기증은 금기시되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그는 의료계 종교계 언론과 협력해 국민 인식 전환에 앞장섰고 때로는 장기 밀매꾼으로 오해받아 경찰 조사를 받는 고난도 감내했다. 대학과 함께 백혈병 어린이 골수기증 캠페인을 진행하고 언론을 통한 희망의 사례를 보도하며 장기기증의 필요성과 신앙적 의미를 확산시켰다.
그의 뚝심 있는 행보는 법제화로 이어졌다. 1999년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장기기증 및 이식 관련 법률 입법을 주도해 2000년 2월 9일 ‘장기기증 및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제정에 결정적 이바지를 했다. 이를 통해 정부 차원의 기증 구득기관(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설립돼 장기기증 제도가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화됐다.
강 회장의 헌신은 생명 나눔을 넘어 복지 사각지대 해소로 확장됐다. 2000년 부산 최초 무료 혈액투석병원인 ‘사랑의 의원’과 ‘사랑의 인공신장실’을 설립해 20년간 110만 회(450억원 상당)의 무료 투석과 약품 지원을 이어왔다. 또 2008년에는 중증 만성신부전증 환자와 말기암 환자를 위한 무료 숙식시설 ‘사랑의 쉼터’를 세워 무료 의료·생활 지원을 제공했다. 2017년에는 부산시로부터 장애인 데이케어센터 설립 인가를 받아 중증 장애인의 문화 활동과 여가생활을 전액 무료로 지원했다.
강 회장은 학문적 기반 구축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세계 최초로 ‘한국장기기증학회’를 창립해 장기기증의 사회적 거버넌스 연구를 이끌었다. 매년 9월 9일 ‘장기기증의 날’을 기점으로 한·중·일 국제심포지엄을 주최해 한국이 아시아 장기기증의 중심국으로 서게 했다. 2015년 이후 12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한 그는 ‘세계 최초 장기기증 활성화와 거버넌스 실현’이라는 주제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 회장은 장기기증을 “하나님을 믿는 자의 신앙 고백이자 사랑의 마지막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아직도 유교적 관념에 묶인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셨듯 장기기증은 믿는 자의 기본”이라며 “교회가 세속화의 위기를 넘어 생명과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이어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릴 때 교회가 세상을 살릴 수 있다”며 “교회가 약자를 위해 헌신하고 장기기증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강 회장은 정부·지자체·교회가 협력하는 거버넌스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장기기증 민간단체와 학회가 함께 국가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장기기증을 통해 비기독교인이 새 생명을 얻고 복음으로 변화되는 것이 가장 위대한 복음이라고 믿는다.
강 회장은 부산 기독교 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며 신앙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하려 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공동체로 회복돼야 한다”고 말한다. 청년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라”고 권면한다.
강 회장은 지금까지 103구의 시신을 해부학교실에 기증했다. 본인과 가족 또한 사후 인체기증을 서약했다. 그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믿음으로 병든 자와 함께 울고 웃는 것이 사명”이라고 고백했다. 살인과 폭력, 교권 추락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 속에서 그는 “범국가적 생명 나눔 운동을 일으키는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지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며 오늘도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살아있는 증인으로 서 있다.
부산=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