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아동 성착취’ 가난보다 더 잔인한 건 ‘무관심’

입력 2025-10-24 06:05
샘 이노센시오

국제 NGO 인터내셔널 저스티스 미션(IJM) 필리핀 사무소의 샘 이노센시오(Sam Inocencio) 대표는 최근 방한해 가진 인터뷰에서 필리핀에서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는 온라인 아동 성착취(OSEC) 문제의 현실과 이를 근절하기 위해 IJM이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대응 활동을 소개했다.

샘 대표는 2003년 IJM 필리핀에 합류한 이후 상업적 성착취로 고통받는 여성과 아동을 구출하고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헌신해 온 필리핀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다. 그의 이러한 공로는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아, 지난해 미국 국무부가 선정하는 ‘인신매매 근절 영웅(2024 TIP Hero)’에 이름을 올렸다. 이 상은 매년 전 세계에서 인신매매 근절과 인권 증진을 위해 헌신한 인물을 기리는 권위 있는 상이다.


샘 대표는 “아동 성착취와 인신매매는 단순한 빈곤 문제가 아니라 폭력과 사회적 무관심이 만든 구조적 범죄”라며 “우리는 이 범죄가 더 이상 ‘쉽게 저질러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IJM이 필리핀에서 활동을 시작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인신매매와 성착취는 사회적 관심 밖의 문제였다. 여성과 어린이들이 경찰서 바로 인근의 유흥업소에서 팔리고 학대당했지만, 그 현실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샘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는 정부 기관과 협력해 형사사법체계를 개선하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정부와의 협력이 쉽지 않았다. 관계자들을 찾아가면 ‘왜 NGO가 형사사법 문제에 관여하느냐’는 냉담한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는 “끈질긴 신뢰 구축과 현장 중심의 협업을 이어간 끝에, IJM은 경찰, 검찰, 사회복지기관과 함께 구조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공식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게 됐다”고 전했다.

2011 재규어 바 검거 작전

특히 ‘재규어 바(Jaguar Bar)’ 작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당시는 세부에서 가장 악명 높은 불법 성매매 업소였다. 수많은 소녀들이 인신매매를 통해 끌려와 착취를 당하던 곳이다”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이른바 ‘언터처블(untouchable)’로 불리던 장소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우리는 법무부와 경찰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단 한 번의 작전으로 150명에 달하는 여성과 소녀들을 구출할 수 있었고 그날 이후 세부의 성착취 산업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고 회고했다.

현재 IJM 필리핀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격히 확산된 온라인 아동 성착취(OSEC, Online Sexual Exploitation of Children)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이 범죄는 아이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성적으로 착취한 뒤 그 영상을 해외 구매자들에게 판매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온라인아동성착취 피해아동 모습(재연)

특히 가해자 상당수가 부모나 친척 등 가족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충격이 더욱 크다. 또한 인터넷과 디지털 금융 플랫폼의 확산으로 장소와 시간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온라인 아동 성착취 범죄가 필리핀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샘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1,600명 이상의 피해 아동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이제는 단순히 피해자를 구출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범죄가 애초에 발생하기 어려운 시스템으로 바꾸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동 성착취 문제를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생존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합니다.”

이번 방한 기간 동안 체결된 곰앤컴퍼니와 IJM Korea 간의 업무협약(MOU)은 국내 IT기업이 온라인 아동 성착취 문제 해결에 직접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곰앤컴퍼니 이병기 대표는 “미디어 기술을 선도해 온 기업으로서 온라인상에서 인권이 침해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기술 개발을 넘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인권 가치를 확산하는 책임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곰앤컴퍼니는 IJM Korea와 협력해 온라인 아동 성착취를 비롯한 현대판 노예 문제의 종식을 위한 디지털 옹호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샘 대표는 “온라인 아동 성착취는 더 이상 필리핀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가 함께 직면한 공동의 과제”라며 “한국 사회도 이 범죄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예방과 대응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