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시점의 ‘굿 보이’…지금껏 이런 공포영화는 없었다

입력 2025-10-25 08:00
영화 '굿 보이'의 한 장면. 찬란 제공

인류의 오랜 친구인 개가 영화에 나오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핵심 배역을 맡은 작품도 여럿 있다. 가족과 함께 흘러가는 개의 일생을 그린 ‘말리와 나’(2009), 매일 퇴근길 주인을 마중 나가는 개의 충직함을 다룬 ‘하치 이야기’(2010) 등 잔잔하고 따뜻한 영화가 대부분이다. 장르가 ‘공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개가 공포 영화의 주인공인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

메가박스에서 지난 22일 개봉한 ‘굿 보이’는 개의 시점으로 완성된 최초의 공포 영화다. 주인공인 리트리버 인디가 겪는 상황과 감정을 따라 극이 진행된다. 병에 걸려 입원했지만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고 과거 할아버지가 살던 숲속 외딴집으로 간 토드(셰인 젠슨)의 곁을, 그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반려견인 인디가 껌딱지처럼 지킨다.

영화 '굿 보이'의 한 장면. 찬란 제공

극은 오롯이 인디에게 집중된다. 토드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얼굴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뚜렷한 생김새보다 냄새 등의 오감으로 주인을 인지하는 강아지의 특성을 고려한 설정으로 보인다. 인디는 놀랍게도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상황을 관객에게 전달해 낸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불안해하는 얼굴이나 낯선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발걸음은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세상의 모든 강아지가 그렇듯 인디는 토드만을 지키고 따른다. 아픈 토드가 침대에서 내칠 때도 인디는 그를 지키려는 듯이 방문 앞에 가만히 엎드린다. 악화하는 병세와 죽음을 형상화한 듯한 검은 존재가 등장할 때마다 인디는 공포에 떨지만, 그것이 토드를 위협할 땐 두려움을 이기고 용감히 맞선다. 토드를 끝까지 지키려는 인디의 처절한 몸부림은 짙은 감동으로 남는다.

벤 레온버그(왼쪽) 감독과 반려견 인디. 찬란 제공

인디는 연출·각본을 맡은 벤 레온버그 감독과 아내인 캐리 피셔 프로듀서가 실제로 기르는 반려견이다. 레온버그 감독은 인디와 여러 편의 실험 단편을 제작한 끝에 장편영화 주연으로 결정하고 3년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여느 배우 못지않게 훌륭한 연기를 펼친 인디는 올해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영화제에서 ‘최우수 개 연기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사랑하는 반려견만을 곁에 둔 채 세상과 단절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고립과 불신, 유대의 의미를 돌아본다. 레온버그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의학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가족의 정의는 달라졌으며, 외로움은 전염병처럼 번졌다”면서 “이런 현대적 주제와 현실적 공포를 결합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러닝타임 72분, 12세 관람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