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테크기업들의 인공지능(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리콘밸리의 AI 인재들이 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2일(현지시간) “AI 인재들이 ‘신기술 군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주 100시간 이상 근무 등 살인적인 근무환경에 놓여있다”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AI 연구자들과 경영진들은 주 80~100시간가량의 근무를 소화해내고 있다. 그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경쟁에 대한 압박이라고 WSJ는 전했다.
AI 연구원 조시 뱃슨은 차세대 AI 선두주자로 꼽히는 앤트로픽에서 근무하고 있다. 인간의 지능을 압도적으로 초월한 수준의 ‘초지능 AI’라는 목표를 위한 경쟁 속에 내몰리고 있는 실리콘밸리 AI 연구자‧경영진 그룹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SNS를 즐길 시간조차 없다. 유일하게 즐거움을 얻는 시간은 사내 메신저 슬랙을 통해 동료들과 거대언어모델(LLM)과 AI 구조와 관련된 실험이나 이론에 대해 대화할 때다. 그는 “우리는 20년에 걸쳐 이룰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2년 만에 끝내기 위해 속전속결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WSJ는 앤트로픽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애플, 오픈AI 등의 최고 연구자와 임원들이 자신들의 일을 인류의 핵심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 중 다수가 수십억원대 자산가가 됐음에도 정작 이룩한 부를 쓸 시간은 없다고 전했다.
실리콘밸리에서 AI 인재 확보 경쟁이 본격화된 건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경쟁사에서 핵심 인력을 빼내 가면서다. 메타는 수백만 달러 규모의 연봉을 제시하며 사람들을 스카우트했다. 메타의 대대적인 AI 인재 영입은 현시점 세계시장에서 가장 귀한 자원이 소수의 AI 연구 인력과 경영진임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기업들은 소수의 고급인력으로부터 최대한의 성과를 도출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디비 세왁 구글 딥마인드 수석연구원은 “모두가 항상 일하고 있다”며 “강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멈출 타이밍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스타트업들은 근로계약서에 주 80시간 이상의 근무를 명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적인 분위기 탓에 별도의 근무시간이 명시돼 있지 않아도 연구자들과 경영진들은 주 80시간 이상 노동을 자처하는 현실이다.
몇 년간 세계 최고 수준의 AI 인재를 영입해왔던 메타는 최근 AI 조직 비대화를 막기 위해 약 600명의 감원 조치를 실시했다. 감원은 메타의 전체 AI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초지능 연구소 내에서 이뤄졌다. 이번 감원을 두고 챗GPT 출시 이후 치열해지고 있는 AI 경쟁 속 메타가 겪고 있는 압박감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WSJ는 스타트업 붐이 있을 때마다 야근 문화는 흔했지만 실리콘밸리 대기업에서조차 이런 극단적인 근무가 일반화된 것은 드문 일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9-9-6’(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였던 근무 패턴이 이제는 ‘0-0-2’(자정부터 자정까지 주말 2시간 휴식)으로 불릴 정도다.
이런 초장시간 근무자들을 위해 회사들은 주말 식사를 운영하는 등 편의 제공에 나서고 있다. 지출관리 스타트업 ‘램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법인카드 데이터를 보면 토요일 정오~자정 음식 주문 배달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경쟁은 과거 다른 기술 붐과는 다르다고 AI 인재들은 말한다. 아파르나 체나프라가다 마이크로소프트 최고제품책임자는 “닷컴붐이나 아이폰 등장 시기에는 기술 확산에 10년 이상이 걸렸지만 AI는 불과 몇 년 만에 미국 내 매출 상위 500개 기업 중 90% 이상이 도입했다”고 말했다.
뱃슨씨도 “AI 모델의 발전이 너무 빠르고 예측 불가능하다. AI 개발은 공학보다는 진화에 가깝다”고 말했다. 세왁 수석연구원은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그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아직 누구의 삶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도 휴가를 가지 않고, 친구나 취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시간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