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순·김지영·강효정, 해외 진출 1~3세대 K발레 스타들 한 무대에

입력 2025-10-23 10:25
한국 발레의 해외 진출 1~3세대를 대표하는 허용순(가운데), 김지영(오른쪽), 강효정(왼쪽)이 최근 서울시발레단의 노들섬 연습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c)세종문화회관

허용순, 김지영, 강효정. 한국 발레의 해외 진출 1~3세대를 대표하는 세 사람이 각각 안무가, 지도자, 출연자로 서울시발레단에 모였다. 이들은 서울시발레단이 오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에서 선보이는 서울시발레단의 ‘한스 판 마넨 × 허용순’에 참여한다. 네덜란드 출신 거장 안무가 판 마넨의 ‘캄머발레’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허용순의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Under The Trees' Voices)를 더블 빌로 선보이는 무대다. 더블 빌은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는 방식이다.

국제무대 진출 1세대인 허용순(61)은 1980년 서울 선화예고 재학 중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김인희 전 서울발레시어터 단장과 함께 모나코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발레단에 입단했다. 이후 스위스 취리히발레단과 바젤발레단의 솔리스트를 거쳐 독일 뒤셀도르프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와 발레마스터로 활동했다. 지난해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의 리허설 디렉터를 맡고 있다.

허용순, 유럽의 컨템포러리 발레단 주역에서 안무가로

한국 발레의 해외 진출 1세대를 대표하는 허용순. (c)세종문화회관

22일 서울시발레단의 노들섬 연습실에서 만난 허용순은 “문훈숙 단장과 김인희 전 단장은 모나코 발레학교를 마치고 한국의 유니버설 발레단 창단 멤버로 합류했지만, 나는 컨템포러리 발레가 좋아서 유럽에 남았다. 1980년대 유럽 발레단에서 활동한 무용수는 나와 모나코 발레학교 2년 후배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뿐이어서 외로웠었다”면서 “하지만 한국 발레가 빠르게 성장해 요즘엔 전 세계 발레단에서 한국 무용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1세대 선배로서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허용순은 무용수 시절 마츠 에크, 윌리엄 포사이스, 우베 숄츠 등 여러 컨템포러리 발레 안무가와 작업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2001년 뒤셀도르프 발레단 발레마스터로 활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안무를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 발레단들로부터 작품 위촉을 받는 안무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지금까지 52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서울시발레단 단원들이 노들섬 연습실에서 이번에 선보이는 허용순 안무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를 연습하고 있다. (c)세종문화회관

서울시발레단에서 이번에 선보이는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는 지난해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발레단에서 초연한 후 1년 만에 국내에 소개된다. 이탈리아 작곡가 겸 지휘자 에지오 보쏘(1971~2020)의 동명 교향곡에 안무한 작품으로, 허용순은 자신에게 많은 영감을 줬던 보쏘에게 헌정했다. 속도감 있으면서 감각적인 움직임으로 가득 찬 것이 특징이다.

허용순은 “보쏘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까워서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 공연의 구성은 독일 초연과 같지만, 서울시발레단 무용수들의 개성과 에너지를 반영해 솔로 파트를 추가하는 등 재안무했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발레단과는 이번에 처음 작업을 했는데, 무용수들이 정말 열심히 해줘서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김지영, 무용수로 계속 활동하며 지도자로 성장

한국 발레의 해외 진출 2세대를 대표하는 김지영. (c)세종문화회관

2세대인 김지영(47)은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마치고 1997년 19살의 나이에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이듬해 수석무용수로 발탁됐다. 그리고 국립발레단에서 김용걸, 김주원, 이원국과 함께 한국 발레의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이후 해외로 눈을 돌린 그는 2002~2009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약한 뒤 국립발레단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22년간의 직업 무용단 생활을 마치고 2019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도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다.

김지영은 “내가 유학을 떠난 1990년대 전반은 발레를 포함해 여러 분야에서 한국 학생들의 유학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였다. 허용순 선생님이 유학할 때 한국 학생을 만나기 어려웠던 것과 많이 다르다”면서 “러시아 유학을 거쳐 한국과 네덜란드에서 발레단 생활을 하다 보니 우리 발레계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됐는데,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과 열정이 급성장의 토대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되돌아봤다.

서울시발레단이 지난해 선보인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 공연 장면. (c)세종문화회관

음악성과 세련미가 넘치는 한스 판 마넨의 대표작 ‘캄머발레’는 서울시발레단의 첫 해외 라이선스 작품이다. 김지영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시절 당시 상주 안무가였던 판 마넨의 여러 작품에 출연한 바 있다. 2007년 ‘캄머발레’에 출연한 인연으로 지난해부터 2년 연속 서울시발레단 공연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올해 스테이저(지도자)까지 맡게 됐다. 세계적 안무가의 대표작을 한국 무용수가 공식적으로 지도하는 최초의 사례다. 서울시발레단은 김지영처럼 국내에 클래식 레퍼토리로만 알려져 있던 무용수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한편 지도자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지영은 “네덜란드 시절 판 마넨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좋아했던 ‘캄머발레’를 한국 관객에게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 지도하는 입장이 되자 작품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판 마넨에 대해 더 많은 걸 느끼게 됐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해외 라이선스 작품의 공연은 단발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시발레단이 안무가와 커넥션을 구축하고 작품을 지속할 수 있도록 무용수에게 리허설 디렉터나 스테이저 같은 역할을 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강효정, 그동안 국내에선 못본 컨템포러리 발레 기량 뽐내

한국 발레의 해외 진출 3세대를 대표하는 강효정. (c)세종문화회관

3세대인 강효정은 서울 선화예중 재학 중이던 1998년 미국 키로프 발레아카데미에 들어갔다. 2002년 로잔콩쿠르에서 입상한 이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부설 존 크랑코 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2004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해 승급을 거듭한 끝에 2011년 수석무용수가 됐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수석무용수였다. 하지만 2021년 마틴 슐래퍼 오스트리아 빈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의 권유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떠나 빈으로 옮겼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25~2026시즌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강효정은 “나는 항상 배우는 걸 좋아하는 예술가인 것 같다. 익숙한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낯선 빈으로 옮긴 것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빈 국립발레단에서 의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면서 “이번 시즌 다시 ‘제2의 고국’인 독일로 돌아와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한편 드레스덴의 팔루카 무용대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특히 대학원에서 움직임은 물론 해부학 등 무용에 대한 다양한 것을 배우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강효정(왼쪽)이 서울시발레단 노들섬 연습실에서 허용순 안무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를 연습하고 있다. (c)세종문화회관

서울시발레단의 이번 공연에서 강효정은 허용순 안무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에 출연한다. 보쏘의 삶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준 이탈리아 배우 겸 가수 알바 파리에티 역할이다. 강효정이 한국에서 선보이는 첫 컨템포러리 발레 무대다. 앞서 몇 차례 국내 무대에서 그는 클래식 발레 아니면 드라마 발레를 선보였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그는 여러 컨템포러리 발레 안무가들과 작업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바 있다. 크리스티안 슈푹이나 에드워드 클루그 같은 안무가가 그를 위한 배역을 특별히 만들어줄 정도다.

강효정은 “클래식 발레의 경우 정해진 규칙과 틀 안에서 정확한 동작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한다면 컨템포러리 발레는 좀 더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면서 “무용수로서 둘 중의 하나를 고르기 어렵다.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를 같이 하는 데서 시너지가 온다”고 설명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