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예정된 정상회담을 취소했다고 22일(현지시간) 밝혔다. 미국은 이날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를 이유로 러시아 대형 석유 기업 두 곳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러시아를 직접적으로 제재한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회담 자리에서 “우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취소했다. 적절치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에 이르지 못할 것 같았다”며 “그래서 회동을 취소했지만 우리는 미래에 회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지난주 푸틴과의 통화 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취소한 것이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푸틴)와 대화할 때마다 좋은 대화를 나눴지만 결국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고 했다.
트럼프의 회담 취소 발표 전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는 러시아 최대 석유 기업 로스네프트와 루코일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기를 거부함에 따라 재무부는 크렘린의 전쟁 기계를 지원하는 러시아 최대 석유 기업 두 곳을 제재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전쟁 종식 노력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경우 재무부는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동맹국들이 이 제재에 동참하고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석유는 러시아의 최대 수입원 중 하나다. 로스네프트와 루코일은 러시아와 국제 시장에서 석유와 천연 가스 탐사와 정제, 운송·판매 등을 담당한다. 미국의 제제에 따라 해당 기업과 자회사 30여곳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과의 거래도 모든 거래도 금지된다.
트럼프도 제재 배경에 대해 질문받자 “제재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제재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첫 직접적 조치로 루코일과 로스네프트 및 이들 계열사 30여 개사를 대상으로 한다”고 전했다. 악시오스도도 “트럼프는 그동안 러시아 제재가 전쟁 종식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며 “이번 입장 전환은 해당 접근법이 실패했다고 판단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로저 위커 미 상원 군사위원장과 마이크 로저스 하원 군사위원장도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푸틴의 지연 전술과 공허한 약속은 그가 유혈 사태를 종식시키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보여준다”며 러시아에 대한 지속적 압박을 촉구했다.
다만 트럼프는 모스크바까지 타격 가능한 토마호크 장거리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토마호크는 매우 복잡해서 발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직접 발사하는 것 뿐인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라며 “우리는 사용법을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반발을 고려해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트럼프는 이달 31일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 대해선 “상당히 긴 회담이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미·중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중국의 희토류 통제와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뿐 아니라 핵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마 핵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에 이를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가 핵무기가 가장 많고 두 번째가 러시아, 중국이 세 번째인데 4∼5년 안에 너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