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발등의 불 끄는 데만 급급한 KT

입력 2025-10-23 05:30

KT가 해킹 사태에 따른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 대상으로 2만여명을 선정했다. 불법 기지국 접속 기록이 있거나 직접적인 무단 소액결제 피해를 본 이들만을 대상으로 위약금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KT의 이런 조치는 발등에 당장 떨어진 불을 끄는 데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번호이동에 따른 위약금은 불안감을 느낀 가입자들이 약정을 깨고 다른 이동통신사로 이동할 때 발생한다. 그러나 애초에 가입자들은 통신사가 약정 기간 동안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이란 전제하에 약정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KT가 해킹 공격에 노출돼 이런 신뢰가 깨졌으니, 위약금 면제 대상을 전체 고객으로 확대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KT 이용약관 제39조 5항도 ‘기타 회사의 귀책 사유인 경우’가 인정되면 위약금 납부 의무가 면제된다고 명시한다.

피해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객을 대부분을 위약금 면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주장을 가입자들이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KT가 지난달 11일 처음 언론 브리핑을 연 이후 계속해서 피해 범위·인원·지역이 확대되고 있다. 불법 기지국은 기존 4개에서 20개로 5배 늘었고, 서울 금천구·경기도 광명 일부에 국한됐다던 피해 지역은 서울 서초·경기도 일산·강원도 일대까지 커졌다. 사실상 범행과 피해를 둘러싼 모든 정보가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이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본인의 피해 사실이 언제 확인돼도 이상하지 않다. SK텔레콤도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고객의 위약금을 면제했다.

이 사태의 총책임자인 김영섭 사장의 결단력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크다. 김 사장은 지난달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서 수차례 책임 지고 사임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사실상 사임 의사가 없다고 강조했다. 함께 출석한 조좌진 롯데카드 사장이 사임을 고려한다고 하는 와중에도 김 사장은 “지금 말씀드리기 부적절하다”며 직에 대한 ‘소신’을 지켰다. 결국 여론이 악화하자 지난 21일에서야 “상황이 수습되면 사퇴를 포함한 책임을 지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위약금은 통신사와 고객 간 약속된 ‘보증금’의 역할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상호 신뢰를 약속하는 증표다. 불법 기지국이 고객 정보를 탈취해 몰래 결제를 진행하는 초유의 사태하에서라면 그 신뢰가 이미 깨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KT가 대승적 차원에서 무엇이 현명한 판단일지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