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대] 도시철도 적자, 복지의 비용을 재설계할 때

입력 2025-10-22 17:51

부산을 비롯한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정부를 향해 무임수송 손실 보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복지’의 이름으로 유지돼 온 제도가 지방공기업의 재정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22일 공개된 부산교통공사의 지난해 결산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적자가 4192억원으로 처음 4000억원을 넘어섰다. 고령화로 무임승차 인원은 1억757만 명, 무임손실액은 1737억원에 달했다. 2021년 1090억원이던 손실이 3년 만에 60% 넘게 늘었다. 부채는 1조8874억원에서 2029년 2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부채비율은 78.7%. 시 재정지원금도 지난해 3811억원으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적자 폭은 줄지 않는다. 지방이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 적자다.

정부는 “도시철도는 지방사무이므로 감면 손실도 지자체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건설 당시 국비 지원이 있었고, 도시철도가 없는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한다. 한정된 재정에서 중앙정부가 모든 손실을 떠안을 경우 또 다른 불균형이 생긴다는 논리다. 실제로 지방의 재정 자립도 차이를 고려하면 중앙이 일괄 보전할 경우 특정 지역에 대한 과도한 지원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정 부분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무임수송 제도는 지방의 자율정책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도입한 복지정책이다. 1980년 국무회의와 1984년 노인복지법·장애인복지법을 근거로 정부가 시행했으며, 노인복지법 시행령에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도시철도 운임을 100% 감면하도록 명시돼 있다. 명백한 강행규정이다. 지자체가 조례로 할인율을 낮출 수도, 적용 대상을 줄일 수도 없다. 제도를 만든 정부가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

“건설비를 지원했으니 운영 적자는 지방 몫”이라는 논리도 현실을 외면한다. 개통 40~50년이 지난 도시철도는 시설과 차량의 노후화가 심각하다. 전국 6개 기관이 향후 5년간 투입해야 할 노후시설·전동차 교체비만 4조5826억원이다. 건설비 분담과 운영의 지속 가능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형평성 논리 역시 유효하지 않다. 서울·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와 경기도 등 도시철도가 있는 지역의 거주 인구는 전국의 67.5%에 이른다. 국민 셋 중 둘이 지하철 무임수송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철도가 없는 지역 주민 역시 대도시를 방문하면 같은 혜택을 받는다. ‘도시만의 복지’라는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사회적 편익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아주대 유정훈 교수 연구에 따르면 무임수송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편익은 연 2362억원 규모다. 자살과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감소, 의료비 절감, 관광 활성화 등으로 국가 전체의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제도가 국가 복지정책이라면 그로 인한 재정적 책임도 국가가 나눠야 한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다니는 열차에 노인이 몇 명 더 탄다고 손해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운임 수입 기반의 붕괴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유료 승객이 줄고, 운임 체계가 유지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여기에 노후화된 전동차 교체비와 인건비 상승이 겹치면서 도시철도는 사실상 ‘적자에 갇힌 복지제도’가 되고 있다.

이제는 국가와 지방이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도시철도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등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공익서비스비용(PSO)을 국가 또는 원인 제공자가 부담하도록 명문화한 법안이다. 올해 정기국회가 사실상 분수령이다. 이번에도 논의가 미뤄진다면 지방공기업의 도산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다만 국비 보전만이 해법은 아니다. 정부는 재정 여건과 지역 형평성을 고려한 단계적 보전 안을 검토하고, 지자체는 운임 체계 합리화와 비 운송 수익 확대 등 자구책을 병행해야 한다. 세대 간 형평성을 반영해 무임 승차 허 나이를 상향하거나 소득 수준에 따른 차등 지원을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 그 비용을 외면한 복지는 오래가지 못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이 서로의 책임을 미루는 사이, 도시철도는 고령사회의 교통망이자 복지 인프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제도를 만든 쪽이 그 지속 가능성도 책임져야 한다. 복지의 그늘을 외면한 국가는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