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8주년을 기념해 신앙과 과학, 신학과 학문의 통합적 질서를 재조명하며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사상이 오늘의 과학 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칼빈학회(회장 장훈태)는 20일 서울 서초구 백석대 비전센터에서 제4차 정례발표회를 열고 ‘칼뱅과 과학’을 주제로 논의했다.
이신열 고신대 교수는 ‘칼뱅의 창세기 1장 이해에 나타난 과학적 사고’ 발표에서 칼뱅이 신앙과 과학을 대립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칼뱅의 ‘창세기 주석’(1554)과 ‘창세기 설교’(1559~60)를 함께 비교하며 “칼뱅은 과학, 특히 천문학을 통해 하나님 창조의 질서와 지혜를 드러내려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칼뱅이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모세가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표현했다고 강조했다. 가령 칼뱅이 창 1:16의 ‘두 큰 광명’에 대해 “달은 토성보다 작지만 가까이 있어서 더 크게 보인다”고 설명했다는 점을 들었다. 모세가 과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기록했다는 뜻이다.
또 칼뱅은 ‘궁창 위와 아래의 물’을 천사의 비유로 해석하지 않고 수증기가 올라가 구름이 되고 다시 비로 내리는 자연의 원리로 이해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칼뱅은 이런 설명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질서 있게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며 “자연의 현상 속에서도 신앙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칼뱅의 과학적 사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주석보다 설교에서 칼뱅의 과학적 감수성이 더 풍성하게 드러난다”며 “특히 별들의 움직임과 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정확한 계산과 통치’를 설명한 부분은 과학을 신앙 교육의 통로로 삼은 대표적인 예”라고 덧붙였다.
장훈태 회장은 개회사에서 “칼뱅에게 과학은 신앙의 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탐구하는 경건한 행위였다”며 “AI와 기후 위기 시대, 인간 중심의 지성을 하나님 중심의 지혜로 돌려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학회에서는 이 교수뿐 아니라 최성렬 Alphacrucis University College 박사가 ‘칼뱅에게 복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상 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주제로, 김지혜 장로회신학대 박사가 ‘16세기 첫 여성 프로테스탄트 팸플릿 작가 아르굴라 폰 그룸바흐의 예언가적 정체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