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잃은 시대, 참된 장로의 삶을 만나다”

입력 2025-10-21 14:08 수정 2025-10-21 14:10
1966년 막사이사이상 시상식에 참석한 김용기(오른쪽 두번째) 장로가 단상 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파이오니아21 제공

가나안 농군학교 설립자 일가 김용기 장로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가나안 김용기’가 22일 개봉한다. 기독교 영화를 만드는 파이오니아21이 제작한 이 영화는 2021년 서울사랑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으나 4년 만에 정식 개봉하게 됐다. 연출을 맡은 김상철 감독은 2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어른을 잃어버린 시대에 참 어른과 스승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한국 교회가 김용기 장로처럼 ‘보석 같은 분들’의 이야기를 잘 가르치지 않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영화의 한 축인 김 장로의 아들 김범일 가나안농군학교 명예이사장이 올해 구순을 맞은 것도 개봉을 결심한 계기 중 하나다. 그는 “한국 기독교 영화가 목사, 선교사는 많이 다뤘지만 장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다룬 영화는 내가 아는 한 없었다”며 “4년 동안 개봉이 미뤄진 것에 대한 부채감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로는 목사와 함께 교회를 이끄는 리더”이며 “김용기 장로는 오늘날 필요한 모범”이라고 덧붙였다.

‘가나안 김용기’를 연출한 김상철 감독이 지난 16일 서울 용산CGV 시사회에서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CGV 시사회에서 공개된 영화는 ‘근로·봉사·희생’을 강령으로 “한 손엔 성경, 한 손엔 괭이”를 실천한 김 장로의 삶을 따라간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한 일화는 그의 굳건한 신앙과 민족정신을 보여준다.

그의 삶의 태도는 1966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할 때 아들의 만류에도 신고 간 고무신에도 드러난다. 그는 시상식에서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농부이기 때문에, 교회 장로이기 때문에 고무신을 신고 왔다”며 “필리핀과 한국 사람들이 고무신을 더이상 안 신을 때까지 저는 고무신 신고 일하겠다”고 선언해 박수를 받았다. 척박한 땅을 옥토로 일군 그는 가나안 농군학교를 통해 기독교인뿐 아니라 사회 지도층, 수녀 등 타 종교인과도 ‘가나안 정신’을 나눴다.

1966년 막사이사이상 시상식에 참석한 김용기(오른쪽 두번째) 장로가 흰두루마기를 입고 고무신을 신고 있다. 파이오니아21 제공

그의 복민주의 사상은 1960~70년대 새마을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2년 2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 국무위원들을 대동하고 가나안 농군학교를 방문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 감독 역시 “새마을운동을 직접 같이 하진 않았지만 정신적인 뿌리를 제공하신 분”이라고 언급했다.

영화는 가나안 정신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확산하는 과정도 비중 있게 다룬다. 2009년 연수를 받은 우간다의 존 보스코는 귀국 후 37개 마을을 담당하는 군수가 되었으며, 2008년 연수생인 케냐의 샤드락은 산간 지방에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빵이나 돈 지원보다 한 사람의 내적 변화가 중요하며, 이것이 운동이 되는 것”이라는 김 장로의 철학을 강조한다.

영화 ‘가나안 김용기’ 공식 포스터. 파이오니아21 제공

개봉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김 감독은 “안타깝게도 개봉관이 거의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기독교 영화처럼 교회나 단체가 극장이나 제작사에 직접 연락해 단체관람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영화는 “100년 미만 짤막한 인생이 밥 먹고 옷 입고 일하고 살다가 마지막에 어떻게 되느냐 이게 문제거든”이라고 묻는 김 장로의 생전 육성이 나온다. 그는 “이 우주 만물 창조주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인생 가치”라며 “그를 먼저 알고 그를 섬길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