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대통령을 ‘마약 수장’이라고 부르면서 콜롬비아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고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 이어 콜롬비아를 향해서도 적대적인 외교에 나서면서 남미 좌파 정부와의 전쟁이 가열화되는 양상이다.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불법 마약 조직의 수장으로 콜롬비아 전역의 크고 작은 농장에서 마약의 대규모 생산을 강력히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페트로는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지원금과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이를 막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을 장기적으로 착취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오늘부터 어떠한 보조금이나 지원금도 콜롬비아에 지원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그동안 마약 퇴치를 위해 콜롬비아에 경제적 지원을 해왔는데 이를 철회하겠다는 엄포다.
트럼프는 “미국에 대해 무례한 말을 하며 지지도가 낮고 매우 인기가 없는 지도자 페트로는 즉각 이 킬링필드를 폐쇄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대신 폐쇄할 것이며 그건 좋은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후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워싱턴DC으로 돌아오는 전용기에서도 기자들을 만나 콜롬비아에 대한 관세를 20일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페트로 대통령에 대해 “정신적 문제를 가진 미친 사람”이라고 맹비난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이 카리브해에서 마약 운반 선박 단속을 한다며 무고한 어부를 살해했다는 페트로 대통령의 비판 직후에 나왔다. 트럼프는 지난달 초부터 카리브해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마약 운반 의심 선박을 공습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20여명이 미군에 사살됐다.
페트로는 이중 지난달 중순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콜롬비아인이 “평생 어부로 살아온 사람”이라며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우리 영해에서 주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은 주로 베네수엘라 마약 밀매 용의자들을 표적으로 삼았지만 다른 국가 출신들도 공습 탓에 죽거나 다쳤다.
트럼프와 페트로의 악연은 이뿐만 아니다. 페트로는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당시 유엔본부 밖에 운집한 친 팔레스타인 집회에 참석, “트럼프의 명령에 불복하라. 인류의 법칙에 복종하라”고 스페인어로 외쳐 트럼프의 격노를 산 바 있다. 미국은 당시 페트로의 연설에 대해 “무모하고 선동적인 행위”라며 비자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콜롬비아는 남미 국가 중에서는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콜롬비아 사상 최초의 좌파 대통령인 페트로가 2022년 8월 취임하고, 트럼프가 지난 1월 취임하면서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1월 트럼프가 불법 이민을 이유로 추방한 사람들을 태운 군용 항공편을 페트로가 수용 거부하면서 양국 관계가 크게 악화했다. 지난주 미국은 약 30년 만에 콜롬비아를 마약 퇴치 비협력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2기 취임 이후 남미 좌파 정부와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 대해서는 축출 의지도 드러냈다. 지난 15일 미 중앙정보국(CIA)의 베네수엘라 내 비밀 작전 수행이 승인됐다. 베네수엘라와 카리브해에는 미국 구축함과 순양함 등도 배치돼 있다.
트럼프는 브라질의 ‘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쿠데타 모의 혐의 기소에 대해서도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하며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조만간 정상회담을 하기로 하면서 긴장 수위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트럼프는 남미 우파 정부인 아르헨티나가 외환 위기를 겪자 재정적 지원을 결정했다. 트럼프는 지난 9일 ‘남미의 트럼프’라 평가받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만나 2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와 민간기금 등 추가 2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20년간 좌파가 집권했던 볼리비아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중도파와 보수파가 대선 결선 투표를 하게 되자 “볼리비아처럼 우리 쪽으으로 다가오는 국가들이 많다”고 최근 말하기도 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