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녀를 만날 당시 그녀의 몸은 곳곳에 멍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품에 어린 딸을 안은 채 지친 표정으로 과거 같은 직장에 근무했던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와 함께 쉴 곳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는 우선 그녀와 아이를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집으로 데려가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녀는 수도권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중 택배회사에 다니던 열 살 연상의 남편을 만났다. 당시 남편은 묵뚝뚝 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그녀를 배려해 주는 것 같아서 곧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남편의 제안으로 동거를 시작했고 임신까지 하게 되었지만, 남편은 결혼식은 물론 혼인신고도 주저했다.
그녀는 남편이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주저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남편은 그녀가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란 점 때문에 수시로 그녀를 무시했는데, 아마 그녀의 성장 환경 때문에 주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쩌겠는가.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만 했다.
혼인신고 후부터 남편은 변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본성적으로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녀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남편은 그녀에게 험한 욕을 내뱉거나 사정없이 때리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온라인게임에서 져서. 밥상에 원하는 반찬이 나오지 않아서. 그녀가 교회에 재산을 퍼다 주려고 교회에 나간다고. 일 나가야 한다고 새벽에 깨우라고 해서 깨우면 깨웠다고. 깨우지 말라고 해서 깨우지 않으면 깨우지 않았다고. 그러면서 꼭 하는 말이 있다. 부모 없이 자라서 무식하다고.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혼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아이가 자기처럼 부모 없이 자랐다는 말을 듣게 될까 봐, 혹시 자신처럼 보육원에서 자라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묵묵히 참고 견뎠다. 그러나 남편의 만행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부터는 애를 업고서라도 돈을 벌어야지 왜 자신만 밖에 나가 고생을 해야 하냐면서 돈을 벌어오라고 난리다. 그래서 파출부 일을 하였더니 ‘남의 집에서 왜 일하냐? 몸 파는 창녀냐? 이 더러운 년아’라고 한다.
참을 수 없게 된 그녀가 시댁에 이야기했더니, 시부모 하는 말이 ‘원래 보육원에서 자란 사람은 맞으면서 사는 것’이란다. 더 이상 의지할 데가 없어진 그녀는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아이를 안은 채 집을 나와서 그에게 찾아갔다. 그는 사실 함께 물류센터에서 근무할 때 그녀에게 마음을 뒀었다. 그녀도 그의 그때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성심성의껏 그녀를 도왔다. 우선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서 이혼 판결을 받았다.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도 그녀에게 주어졌다. 이혼이 마무리된 뒤 그와 그녀는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했다. 그녀의 아픔을 잘 알고 있던 그는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썼다. 그의 사랑 덕분인지 아이도 둘이나 더 낳았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그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 중학교 올라가기 전에 자기가 친양자입양을 하는 게 어떨까’라고. 그녀는 그의 말이 고마웠으나, 전 남편과 다시 엮여서 평화로운 일상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친양자입양을 위해서는 친생부인 전 남편의 동의가 필요한데, 전 남편이 동의를 해 주지 않거나 동의를 구실로 무슨 요구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첫째 딸을 위해 다시 용기를 낸다. ‘든든한 남편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라고 마음을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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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