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극 ‘서편제’의 고선웅 “이청준 선생님이 행복해하셨을 작품이 목표”

입력 2025-10-19 12:27
국립정동극장의 소리극 ‘서편제: 디 오리지널(The Original)’ 장면. (c)국립정동극장

“어설프게 만들어 본질을 훼손하는 대신 원작의 텍스트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원작자인 이청준 선생님이 보셨으면 행복해하셨을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연출가 겸 극작가 고선웅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소리극 ‘서편제: 디 오리지널(The Original)’ 프레스콜에서 이같이 말했다. 북장단과 소리꾼들의 성음으로 이뤄진 소리극인 이 작품의 제목에 ‘디 오리지널’을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고선웅은 그동안 연극 ‘칼로막베스’ ‘조씨고아’ ‘회란기’ ‘퉁소소리’ 등 히트작을 내며 한국 공연계를 대표하는 스타 연출가 겸 극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국립창극단에서 작창가 겸 음악감독 한승석과 콤비를 이뤄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토끼의 팔란’ 등을 선보이며 창극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서편제: 디 오리지널’은 고선웅이 한승석과 콤비를 이뤄 다시 한번 선보인 신작이다.

고선웅이 지난 17일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소리극 ‘서편제: 디 오리지널(The Original)’ 프레스콜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c)국립정동극장

“영화 ‘서편제’는 제 인생작입니다. 당시 부모님도 보여드리는가 하면 원작 소설까지 바로 찾아봤었죠. 소리를 통해 우주가 펼쳐지고 인생의 길이 보이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국립정동극장이 ‘서편제’ 무대화를 제안했을 때 바로 응했어요.”

영화 ‘서편제’로 많이 알려진 이청준(1939~2008)의 연작 단편소설 ‘남도사람’은 1부 ‘서편제’, 2부‘ 소리의 빛’, 3부 ‘선학동 나그네’, 4부 ‘새와 나무’, 5부 ‘다시 태어나는 말’로 이뤄져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년)는 1‧2부를 다뤘고, 속편인 ‘천년학’(2007년)은 3부를 다뤘다. 이후 이지나 연출 뮤지컬 ‘서편제’가 2010년 초연된 이후 2022년까지 다섯 시즌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2013년 국립창극단에서 윤호진 연출과 안숙선 작창으로 창극 ‘서편제’가 만들어진 바 있다.

뮤지컬과 창극이 대중에게 익숙한 동명 영화의 흐름을 주로 따르는 것과 달리 소리극 ‘서편제: 디 오리지널’은 원작소설 1~3부의 줄거리를 충실히 따랐다. 고선웅은 “‘서편제’가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공연계 선배들도 다들 훌륭하게 작품을 만드셨다”면서 “나는 처음부터 어떻게 하면 ’오리지널‘에 가깝게 만들지 생각했다”고 피력했다.

국립정동극장의 소리극 ‘서편제: 디 오리지널(The Original)’ 장면. (c)국립정동극장

‘서편제: 디 오리지널’은 원작소설처럼 등장인물에 따로 배역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원래 아비와 소녀, 사내 등으로 나오던 것을 영화 ‘서편제’가 아비 유봉, 딸 송화, 아들 동호 등의 이름을 붙인 이후 뮤지컬과 창극도 따랐다.

“이름 없이 남도의 소리길을 떠돌았던 소설 속 인물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게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청준 선생님도 많은 소리꾼이 이름 없이 소리길을 지나갔을 거라고 쓰셨습니다.”

원작 소설은 소리꾼의 여러 자질 가운데 한(恨)에 집중했고 이는 영화와 창극 등에서도 이어진다. 하지만 ‘서편제: 디 오리지널’은 소리꾼의 한 자체가 아닌 한을 받아들여 예술로 전환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둔다.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회전하는 대형 원형 무대와 그 위에 놓인 세 개의 소형 원형 무대다. 세 개의 소형 원형 무대는 각 인물의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원작에서 인물들이 길 위를 한없이 떠도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회전하는 대형 원형 무대 위를 배우들이 걷게 만든 연출도 눈에 띈다. 고선웅은 “원형 무대로 구현된 길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장소이자 상처가 축적되고 다시 해소되는 심리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국립정동극장의 소리극 ‘서편제: 디 오리지널(The Original)’ 장면. (c)국립정동극장

이 작품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주요한 고비마다 판소리 다섯 마당의 눈대목, 단가 그리고 민요 등 22곡의 사용이 돋보인다. 이는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소리를 바탕으로 하되 인물의 감정과 극적 상황 등을 고려해 재구성된 것이다. 뮤지컬이나 창극이 동서양 악기를 사용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면, ‘서편제: 디 오리지널’은 ‘비움의 미학’을 가진 전통 판소리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극의 중심 역할을 하는 소녀 역에는 국립창극단 단원 김우정과 서울대 국악과 학생인 박지현, 김우정이 캐스팅된 것을 비롯해 남원시립국악단 악장인 임현빈과 국악밴드 이날치 멤버 안이호가 아비 역으로 함께한다. 그리고 사내 역으로 국립창극단 단원 박성우와 국악 단체 창작하는 타루 멤버 정보권이 나온다. 공연은 11월 9일까지 이어진다.

지난 17일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소리극 ‘서편제: 디 오리지널(The Original)’ 프레스콜에서 출연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c)국립정동극장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