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정에 저항한다”…美 50개주 “왕은 없다” 트럼프 반대 시위

입력 2025-10-19 09:37
미국 워싱턴DC 연방 의회 앞에 18일(현지시간) '노 킹스' 시위대가 집결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오전 9시 미국 메릴랜드주 미들타운의 한 교차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열린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의 열기는 워싱턴DC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이곳에서도 감지됐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지만 오전 일찍부터 수십 명 시민이 교차로 주변에 모여 ‘왕은 없다’ ‘부유층에 세금을’ ‘이것이 파시즘이다’ 등의 팻말을 들고 트럼프 비판 시위에 참여했다. 지나가는 차들도 경적을 울리며 시위대에 호응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미들타운에서 1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독특한 분장을 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집회에 참여한 킴은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트럼프의 이민 정책과 법원을 무시하는 행태가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며 “법의 지배를 무시하면 사법부가 무너지고 의회가 제 역할을 못 하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우리는 세 개의 정부 기관이 서로 견제하게 되어 있는데 지금은 대통령만이 모든 걸 대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크리스티나도 “우리는 정부의 폭정에 항의하러 나왔다”며 “트럼프는 중산층이나 서민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복지를 줄이고, 부자들만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시위대는 트럼프 행정부를 풍자하기 위해 특이한 동물 복장이나 분장을 하고 나와 시위를 축제처럼 즐겼다.

‘노 킹스’ 시위는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미국 동부인 워싱턴DC와 뉴욕, 보스턴 등에서부터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지난 6월 미 전역에서 500만명이 쏟아져 나온 ‘노 킹스’ 시위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 50개 주에서 2500건 이상의 시위가 열렸다고 CNN은 전했다.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는 오전부터 모여든 시위대가 점점 불어나 백악관에서 의사당으로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 대로를 가득 메웠다. 집회 참가자들은 트럼프의 주방위군 동원, 법원 판결 무시, 이민자 대거 추방 등을 들어 트럼프가 독재자나 파시스트처럼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 킹스’라는 집회 이름 역시 트럼프 제왕적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워싱턴 집회에 참석한 진보 진영의 아이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우리는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에 모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위기에 처했다”면서도 결국에는 “우리 국민이 통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에서는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일대에 수만 명이 모여 7번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나는 어떤 왕에게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겠다”라고 적힌 화려한 현수막을 들고 “트럼프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며 행진을 이어갔다.

미국 시카고에서 18일(현지시간) '노 킹스' 시위대가 '시카고에서 손 떼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가 최근 주방위군 투입을 지시한 시카고에서도 수천 명이 모여 “우리 민주주의에 손대지 마라” “ICE(이민세관단속국) 퇴출!”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내를 행진했다. 할리우드 배우 존 쿠삭도 참여해 발언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곳을 파시즘의 거점으로 만들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당신은 우리 거리에 군대를 투입할 수 없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란 진압법을 발동할 만큼 혼란을 일으킬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배우 로버트 드니로도 지지 영상을 통해 “우리는 이번에도 다시 일어나 비폭력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선언한다. 왕은 없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이번 집회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기 위한 연대 시위가 프랑스와 독일, 영국, 스페인 등에서 열렸다.

백악관은 이번 집회에 대한 언론 논평 요청에 “누가 신경이나 쓰나?”라고 짧게 답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최근 폭스 뉴스에서 시위와 관련 “전부 하마스 지지 세력과 안티파(ANTIFA) 사람들이다. 전부 몰려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