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 유리벽 너머로 번진 주황빛 단풍

입력 2025-10-18 09:00
메이플 아지트 입구 모습. 넥슨 제공

서울 강남역 4번 출구를 나오면 투명한 유리벽 사이로 ‘메이플 아지트(MAPLE AGIT)’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퇴근길 인파 속을 지나치다 보면 내부에서 퍼져 나오는 그윽한 조명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멈춘다. 입구 유리벽에 그려진 게임 속 캐릭터는 마치 손님을 반기듯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22년의 역사를 이어온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세계가 강남 한복판에 현실로 펼쳐졌다.

넥슨은 18일부터 서울 강남구의 모처(강남대로 364 1층)에 200평 규모·177석 규모의 상설 PC방 ‘메이플 아지트’를 연다. 지난해 제주에 문을 연 ‘카페 메이플스토리’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메이플스토리’ IP 플래그십 공간이다. 넥슨은 이곳을 단순한 브랜딩 홍보 공간이 아닌 게이머가 언제든 찾아와 게임을 만끽할 수 있는 오프라인 거점이라고 말한다.

내부로 들어서자 ‘헤네시스’ 마을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온다. 벽면을 따라 설치된 주황버섯 조명과 단풍잎 패턴, 곳곳의 포토존이 방문객을 게임 속 세계로 이끈다. 좌석엔 최신식 컴퓨터가 갖춰져 있다. PC방이자 플래그십 스토어라는 정체성이 명확했다.

“단순히 게임을 하는 공간을 넘어서, 추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이동열 메이플스토리 사업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PC방이 한국 게임 문화의 핵심 오프라인 커뮤니티라는 점에서, 메이플스토리 IP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형태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메이플스토리는 지난 여름 PC방 점유율 25%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03년 출시 이후 22년간 이어진 장수 타이틀이 여전히 ‘현역’임을 입증한 셈이다. 넥슨은 이러한 IP의 생명력을 현실 공간으로 확장해, 게임 밖에서도 유저가 머무는 시간을 늘리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메이플 아지트에서 제공하는 오리지널 식음료

메이플 아지트는 게임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한쪽에는 굿즈샵이, 다른 한쪽에는 식포토존이 마련돼있다. 게임을 하다가 출출할 때면 ‘용사라면’ ‘네미의 도시락’ ‘낄낄볶음밥’ 등 게임 속 메뉴를 실물로 재미지게 구현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음료 리스트에는 ‘슬라임 청포도 에이드’와 ‘아지트 엘릭서’, ‘주황버섯 자몽 오렌지 에이드’가 눈에 띈다.

굿즈존에서는 현장 전용 키보드, 헤드셋, 장패드 등 ‘메이플 아지트’ 한정판 제품이 판매된다. 게임 캐릭터 피규어나 장패드, 키캡은 이미 예약 단계부터 팬들의 관심을 끌만 하다. 운영은 e스포츠 복합공간 ‘T1 베이스캠프’ ‘Gen.G GGX’ 등을 기획한 슈퍼플레이가 맡았다. 공간 연출과 F&B 개발, MD 운영까지 전문화한 구성이다.

굿즈샵 모습. 넥슨 제공

이달 18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는 ‘스페셜 오픈’ 기간이다. 팡이요, 세글자, 감스트, 민교, 타요 등 인기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PC방 아르바이트생’으로 등장해 이용자와 함께한다. 각자의 개성을 살린 현장 이벤트와 라이브 방송이 동시에 진행돼 축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시기 발생한 입장권 및 식음료 판매 수익금, 그리고 라이브 방송 누적 조회수를 기반으로 산정한 금액은 전액 기부된다. 기부처는 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도토리하우스’다. 넥슨은 “이용자 이름으로 기부를 진행해, 커뮤니티 전체가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드는 의미 있는 축제로 완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열 메이플스토리 사업 실장. 넥슨 제공

이동열 실장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상시 운영되는 메이플스토리의 거점이 되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은 유동 인구가 많고 접근성이 높아, 팬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곳이다. 1층에 공간을 마련한 이유도 거리에서 바로 ‘메이플스토리’를 체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메이플 아지트는 다음 달 3일부터 상시 운영으로 전환한다. 회원은 시간당 2000원, 비회원은 3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프리미엄룸과 팀룸도 마련돼 소규모 게임 파티나 오프라인 모임이 가능하다.


메이플스토리는 오랜 기간 ‘온라인 커뮤니티’의 상징으로 존재했다. 수많은 유저들이 채팅창에서 친구를 만들고, 길드에서 추억을 쌓았다. 메이플 아지트는 그 공간을 오프라인으로 옮겨온 시도이자, 22년간 이어온 커뮤니티 문화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PC방 특유의 게임 열기 속에서도 이곳은 어딘가 깔끔하고 따뜻한 느낌을 자아낸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던 주황버섯이 벽면에 걸려 있었고, 방문객들은 자연스레 사진을 찍으며 웃는다. 오랜 세월 함께해온 ‘용사님’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는 풍경을 기대할 수 있다.

넥슨은 메이플 아지트를 통해 장수 IP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하려 한다. 게임의 본질인 플레이는 온라인에서 유지하되, 그 외의 감정은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22년차 게임’이 여전히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유연함에 있다.

이 공간은 2000년대 초중생의 추억, 2020년대 MZ세대의 커뮤니티, 그리고 앞으로의 게이밍 문화가 교차하는 접점이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