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윤한솔·김수정 “그리스 신화 통해 인간의 비극적 본질 탐색”

입력 2025-10-18 07:00 수정 2025-10-18 13:31
연출가 윤한솔(오른쪽)과 김수정은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와 2부 ‘라이오스’를 연출한다. (c)국립극단

“용서나 구원이 전제된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진정한 비극이 지금 시대엔 필요한 것 같아요.”(윤한솔)
“세대를 거치며 계속되는 비극이나 폭력이 왜 반복되는지, 우리가 끊어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김수정)

국립극단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테베 왕가의 계속된 비극을 탐구한 5부작 ‘안트로폴리스’(Anthropolis)를 지난 10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했다.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지난 2023년 선보인 작품으로, 윤한솔이 연출을 맡은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10~26일)에 이어 11월 6~22일 같은 장소에서 2부 ‘라이오스’가 상연된다. 3~5부는 내년에 공연된다. 16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연출가는 “그리스 신화가 2025년 한국에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동시대성을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했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 5부작 가운데 윤한솔이 연출한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 (c)국립극단

고대 그리스 도시 테베는 페니키아 왕자 카드모스가 제우스신에게 납치된 여동생 에우로파를 찾다가 건설한 도시가 그 시작이다. 테베는 또 제우스신과 테베 공주 세멜레의 아들인 디오니소스신이 태어난 곳이자 신앙의 중심지다.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테베 왕가의 건국 과정과 디오니소스가 자신의 신성에 도전하는 자들을 벌하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윤한솔 연출가는 “‘프롤로그’는 테베 건국신화에 대한 이야기여서 문명이 전파되는 과정을 표현하려고 했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프롤로그로서 장면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디오니소스’는 신을 새로운 이방인의 문명으로 해석해 새로운 세력(문화)과 기존의 세력(문화) 사이의 대립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 5부작 가운데 윤한솔이 연출한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 (c)국립극단

먼저 막을 올린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18명의 배우와 5명의 라이브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는 대작이다. 또한, 노래와 춤 그리고 라이브 카메라와 대형 스크린의 활용을 통해 강렬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특히 테베의 펜테우스 왕이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을 잡아들이라 명령하는 장면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언을 떠올리게 한다.

윤 연출가는 “그리스 비극이 자신들의 문화인 유럽 관객과 비교해 한국 관객의 이해도는 아무래도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객에게 익숙한 형식인 음악과 춤으로 풀어내려고 했다. 특히 긴 대사의 경우 가사가 있는 노래로 풀어내는 방식이 관객에 다가가기 좋았다”면서 “펜테우스의 계엄 영상은 대본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라이브 카메라를 활용한 영상의 경우 관객이 상황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떨어져서 생각하도록 거칠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 5부작 가운데 김수정이 연출을 맡은 2부 ‘라이오스’의 콘셉트 사진. 1인극인 이 작품에 배우 전혜진이 캐스팅됐다. (c)국립극단

2부 ‘라이오스’는 극작가 쉼멜페니히가 5부작 가운데 그리스 비극 원작 각색이 아닌 유일한 창작 희곡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서사의 중심으로 옮겨놓았다. 김수정 연출가는 “‘라이오스’는 기존 신화에 반기를 드는 발칙한 작품이다. 라이오스의 욕망을 따라가며 어째서 오이디푸스가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아름답지만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 해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관객에게는 우리 부모님도 재밌게 볼 수 있도록 쉬운 방향으로 각색했다. 독일 상황을 반영한 대사의 경우 한국에 맞게 고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부연했다.

‘프롤로그/디오니소스’가 배우만 18명이 무대에 오르는 대규모 프로덕션인 데 비해 ‘라이오스’는 오직 한 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1인극으로 진행된다. 이 작품에 캐스팅된 배우 전혜진은 라이오스,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 예언자 피티아, 테베의 시민들 등 극 중 인물들은 물론 서술자인 이야기꾼 역할을 모두 연기한다. 김 연출가는 “관객들이 전혜진 배우에게서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면서 “연습 과정에서 전혜진 배우의 다면적인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떠올렸다.

연출가 윤한솔(왼쪽)과 김수정은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와 2부 ‘라이오스’를 연출한다. (c)국립극단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