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스 선교사 후손, 150년 만에 한국서 세례 받았다

입력 2025-10-17 12:55 수정 2025-10-17 16:02
예장통합 부산남노회는 지난 14일 부산 거성교회에서 존 로스 선교사의 후손들에게 세례식을 가졌다. 김오룡 노회장이 로스 그림슨(왼쪽 세 번째)과 알렉산더 로스씨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150여년 전 조선의 쇄국정책 때문에 선교사들이 내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한글 성경을 번역해 한국 개신교 선교의 초석을 놓았던 존 로스(John Ross, 1842~1915) 선교사의 직계 후손들이 한국을 방문, 세례를 받았다. 한국에 복음을 전해줬던 선교사의 후손이 한국인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다.

감동적인 현장은 지난 14일 부산 거성교회(김태준 목사)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부산남노회 정기노회에서였다. 로스 선교사의 5대손 알렉산더 로스와 로스 그림슨씨는 이날 노회장 김오룡 목사의 집례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집례한 김 목사는 “이번 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150여년 전 존 로스 선교사를 감동시켜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바로 그 성령께서 한국인 목사에 의해 선교사의 후손들에게 세례를 베풀게 하셨다”며 “복음의 능력은 민족과 세대를 뛰어넘는다. 은혜의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세계 선교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세례를 받은 알렉산더 로스와 로스 그림슨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뉴톤교회(존 로스 기념) 교인으로 등록될 예정이다. 두 사람은 세례를 받은 후 “이번 부산 방문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 속에서 세대를 잇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존 로스 선교사는 1872년 스코틀랜드에서 중국으로 파송돼 선교 활동을 했다. 1874년 10월 당시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인 고려문을 방문해 한국 상인을 만나 전도했다. 여관에 머물던 그에게 50대의 한 상인이 찾아왔고 로스 선교사는 그에게 한국어를 배웠다. 이때 로스는 그 상인에게 한문으로 된 신약성경과 ‘훈아진언(訓兒眞言)’이라는 성경 주석을 건넸다. 상인은 이를 아들과 친구들에게 주어 읽게 했고 이들은 훗날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수세자들이 된다. 그 상인은 한국 첫 수세자 중 한 명인 백홍준의 부친이었다.

존 로스 선교사 생전 모습 사진으로 로스 선교사의 후손들이 이번에 새로 발견한 유품이다.

로스 선교사는 이후 1876년 재차 고려문을 방문해 의주상인 이응찬을 만났고 이듬해부터 선교사를 위한 한국어 교재인 ‘한국어 첫걸음’을 집필, 상하이에서 발간했다. 이 무렵 로스 선교사는 한글성경 번역을 시작해 이응찬과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1878년 봄까지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을 번역했다.

로스 선교사는 조선의 문이 열릴 것을 믿으면서 성경번역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아 성경을 출판했다. 로스 선교사는 한국어는 물론 한국의 소설과 역사, 문화를 익히는 데도 힘썼고 한문이 소수 학자층에게만 이해되고 있음에 비해 다수 민중의 문자인 한글은 습득이 용이하고 번역에서 한문보다 훨씬 정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1881년부터 1886년까지 만주 봉천 문광서원에서 한국인 번역자, 동료 선교사인 매킨타이어와 함께 번역 작업을 진행했고 1887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성경인 ‘예수셩교젼셔’를 출간했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로스 선교사의 후손들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호주 등지에서 흩어져 살고 있던 가족들로 마거릿 로스, 마리온 던킨, 로즈메리 로스 스티븐슨, 앤드루 스티븐슨, 헤더 스티븐슨, 앨런 그림슨, 나타샤 그림슨, 로스 그림슨, 존 로스, 존 로스 주니어, 알렉산더 로스, 헬렌 로스 등이다. 이들의 한국 방문과 세례는 로스 선교사의 헌신이 150년의 시간을 넘어 ‘복음의 온전한 순환’을 이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존 로스 선교사 후손들과 박준수(맨 왼쪽) 목사가 16일 부산 소정교회에서 열린 (사)코이노니아선교회 창립 1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4대손인 마거릿 로스씨는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K-문화에 열광하고 있는데 부산에 와 보니 한국인들의 높은 문화 수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뿌리에는 기독교와 존 로스의 한글 성경 번역이 있다”며 “로스 가문이 K-문화가 세계의 소망으로 더욱 확대되도록 민간 대사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예장통합 부산남노회는 존 로스 선교사 후손들의 한국 방문을 기념해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제1회 존 로스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서는 에든버러대학교 마이클 노스코트 교수, 뉴욕 메디슨가 장로교회 담임목사 아론 잔클로스 박사, 에든버러뉴톤교회(존 로스 기념) 담임목사 박준수 박사, 마거릿 로스 변호사가 ‘K-문화와 세계의 소망’의 주제로 강연과 설교를 진행했다.

㈔코이노니아선교회(이사장 김항재 장로, 회장 김주성 장로)는 지난 16일 창립 15주년 기념식을 부산 소정교회(이근형 목사)에서 열었다. 존 로스 선교사 직계 후손들과 부산남노회 회원, 지역 교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예배와 기념식, 기념 음악회를 진행했다.

존 로스 선교사 후손들이 16일 부산 이사벨중고등학교를 방문해 채플을 마친 뒤 학생들과 함께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채규웅 공로목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롬 8:14)을 주제로 목회 회고와 선교 열정을 나눴다. 채 목사는 로스 선교사가 암흑시대 한국에 복음을 전하고 한글 성경을 번역했으며 띄어쓰기를 가르쳐 한글 보편화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의 네 가지 원리인 말씀, 성령, 양심, 이성이 조화롭게 작용해야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할 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설교했다.

16일 부산 소정교회에서 열린 (사)코이노니아선교회 창립 15주년 기념식에서 채규웅(오른쪽)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채 목사는 눈 수술로 인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설교했다. 왼쪽은 통역을 맡은 박준수 에든버러뉴톤교회 목사.

김항재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이노니아 선교 10주년 기념 책자 발간과 선교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이룬 선교 열매에 감사하다. 존 로스 목사 기념 재건 교회와의 만남, 그리고 존 로스 목사가 개척한 16개 교회, 후손들과 140년 만의 만남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약속의 말씀을 믿고 충성하자”고 당부했다. 김주성 회장은 환영사에 이어 마리온 던킨과 앨런 그림슨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거주하는 김성철(82) 장로는 중국에서 자신의 외증조할아버지가 존 로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해 장로로 헌신하며 섬겼던 사연을 소개했다.

(사)코이노니아선교회는 16일 부산 소정교회에서 창립 15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 뒤 존 로스 선교사 후손들과 참석자들이 함께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후손 중 한 명인 존 로스씨는 후손들을 대표해 답사했다. 이 자리에서 마거릿 로스 씨는 직계 후손 측에서 새로 발견한 존 로스 선교사의 생전 사진을 유품으로 전달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후손들은 16일 부산 이사벨중고등학교 채플에도 참여해 다음세대 청소년들과 교감하는 특별 시간도 가졌다.

존 로스 직계 후손들은 20일 출국 예정이며 일부는 박준수 목사와 함께 24일 장로회신학대(박경수 총장)를 방문해 존 로스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장학금은 직계 후손과 에스겔선교회 이사장 김동호 목사가 지원했다.

부산=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