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금 보유량이 많은 이탈리아에 관심이 쏠린다. 이탈리아는 국가부채 급증으로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을 때도 금을 매각하지 않고 보유해왔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2452t의 금을 보유 중이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8133t), 독일 분데스방크(3351t)에 이어 세계 3위 물량이다. 로이터는 “이탈리아의 금 보유량은 수십 년에 걸친 꾸준한 보호와 거듭된 위기에서도 매각 요구를 거부해온 뚝심의 결과”라고 전했다.
로마의 이탈리아은행 본관 지하 금고에는 약 1100t의 금이 보관돼있다. 비슷한 양이 미국에도 있고 영국과 스위스에도 소량 보관돼 있다. 이탈리아 은행이 보유한 금은 현 시세로 약 3000억달러(약 425조원)다. 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3%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3조5000억유로(약 5790조원)에 달하는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해 금을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 실현된 적은 없다. 금괴를 매각해 필수 공공 서비스 비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탈리아은행은 전혀 매각 의사가 없어 보인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로이터는 금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사랑은 에트루리아 문명 시기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 기류는 근대로 이어졌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고비가 찾아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나치군이 현지 파시스트 정권의 도움 아래 이탈리아의 금 120t을 압류하면서 전쟁이 끝날 때쯤 이탈리아의 금 보유량은 20t까지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 ‘경제 기적’ 시기에 이탈리아가 수출 주도 경제로 성장하면서 달러화 유입이 늘었고 이 중 일부가 금으로 바뀌었다. 이탈리아의 금 보유량은 1960년까지 1400t으로 늘었다.
이탈리아는 영국, 스페인 등과 달리 금융 위기 국면에서도 금을 팔지 않았다. 2008년 국가 부도 위기 때도 금을 매각하지 않았다. 살바토레 로시 전 이탈리아은행 부총재는 2018년 자신의 저서 ‘오로(Oro·금)’에서 “금은 마치 집안의 은 식기, 할아버지의 귀한 시계 같다. 국가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흔들릴 때 어떤 위기에서든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두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