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그네의 신실한 동행자[서평]

입력 2025-10-16 11:53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거룩한 길 ‘비아 돌로로사’의 시장통 한복판에서 성묘교회로 찾아가는 길이였다. 금세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허사였다. 그때 한 백인 신부가 내게 다가왔다. “길을 잃었습니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나를 따라오세요.” 그는 대담하고 익숙한 발걸음으로 비아 돌로로사를 앞장서 걸었다. 그를 따라가다가 마침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순례지, 성묘교회를 만났다.

한 번도 안 가본 길에는 안내가 필요하다. 여행길은 물론이고 학업의 길,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다. 신앙의 길은 어떨까. 요즘같이 정보가 널린 시대일지라도 신앙 여정에는 여전히 안내가 필요해 보인다. 영국성공회 주교 마이클 마셜이 ‘순례를 떠나다’에서 말했듯 신앙의 여정에서도 적절한 안내자는 필요하다. 그 안내자는 효율적이거나 성과 중심의 발 빠른 길잡이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질지라도 끝까지 함께 걸어 주는 사람이다. 미로 같은 신앙 인생 여정에서 적절한 안내자는 굽이마다 그 필요와 의미를 일깨워 준다. 그는 신실한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우리를 목적지까지 인도한다.

'한길 가는 순례자' 저자 유진 피터슨의 생전 모습. 국민일보DB

유진 피터슨의 이 책 ‘한길 가는 순례자’(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는 이런 안내자와 같은 책이다. 특히 신앙의 길로 들어서 하나님의 참된 제자로 살아가는 여정을 시작한 이들에게 적절하다. 책은 시편 120~134편의 열다섯 편 시를 소재로 제자의 길을 다룬다. 이 시들은 하나님 백성이 세상의 고된 삶을 뒤로하고 그분만 섬기기로 결단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가며 부르던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노래’(shiray hammaloth)다. 유진 피터슨은 이 노래를 예수님의 제자로 살길 결단하는 이들이 걸어가며 만나는 열다섯 개의 주제로 풀어낸다.

참 진리의 여정
유진 피터슨은 신앙을 단번의 성취가 아닌 길고 긴 여정으로 그려 낸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과정, 제자가 되는 길은 일확천금을 얻듯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지루하고 난해한 외길 여행이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은 제자도 여행을 순례라고 부른다. 순례는 관광과 다르다. 관광은 구미에 당기는 것들을 얻고 누리는 것이지만 순례는 참 진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때로는 심각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며 진리가 얼마나 얻기 어려운지 깨닫게 한다.

유진 피터슨은 이 여정에 뜻밖에도 흥이 있다고 말한다. 열다섯 편의 노래가 동행하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제자도 순례의 여정에는 그 길을 걷는 이들의 노래가 있었다. 시편이 바로 그런 노래들의 집대성이다. 그중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 우리의 신앙 여정을 상징하는 오르막길에서 순례자가 부르던 노래를 모은 것이다. 순례자는 고난의 길에서도 오직 한곳, 하나님 있는 곳만 바라본다. 그는 이 여행을 떠나기 전, ‘메섹’과 ‘게달’에서 나오면서 자기 삶의 참된 기반이며 주관자가 하나님 한 분뿐임을 받아들이고 고백한다(시 120편). 그는 오직 하나님만 그의 상전으로 섬기기로 결단했다. 순례자는 고된 여행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종처럼, 마님의 시중을 드는 하녀처럼, 우리,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숨죽여 기다립니다. 주님의 자비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하나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시 123편·메시지)

순례길에서 고난은 절규가 되고, 절규는 가락이 되며, 그 가락은 ‘흥’이 있는 기도가 되어 그가 신뢰하는 하나님을 향한다. 그는 절망 가운데서도 노래한다. “절망 가운데 곡식을 심은 이들, 환호성을 올리며 추수하게 하소서.”(시 126편·메시지) ‘한길 가는 순례자’는 그래서 노래하는 여행자다.

이 제자도의 여정은 시편 127편의 고백 위에 세워진다. “하나님이 지어 올리지 않으면 집 짓는 자들이야 기껏 판잣집이나 지을 뿐!” 그의 대표작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제목처럼 유진 피터슨은 이 책에서도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말한다. 그에게 영성은 저 높은 하늘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신비로운 향연이 아니다. 영성은 이 땅의 현실에서 드러나는 전인적 삶이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피조물과의 온전한 관계다. 하루하루 일의 중요성을 알되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유진 피터슨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의 동행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책의 후반부는 인내 소망 겸손 순종이란 주제어가 공동체로 모여 흐른다. “형제자매들이 어울려 지내는 모습!… 헤르몬산의 이슬이 시온의 비탈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모습 같구나. 그렇다. 그곳이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고 영생을 베푸시는 현장이다.”(시 133편·메시지)

이렇게 이어져 온 제자도 여정의 종착지는 시편 134편에서 제시된다. 유진 피터슨은 피조물이 창조 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모든 제자도의 목적임을 재확인한다. 이 여행의 목적은 나의 흥미를 채우는 게 아니다. 참된 제자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유진 피터슨은 제자가 되는 순례 여행의 궁극에 ‘하나님 복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그는 마지막 장 ‘찬양’에서 이렇게 제안한다. “당신이 여행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 주셨기 때문에 당신은 여기에 있다. 이제 당신이 하나님을 찬양하라.”

세상에서 제자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성경의 땅과 기독교 역사 유적지 순례를 기획하고 인도하는 사역자로서 이 책은 내게 지침서와 같다. 나와 우리 동역자가 관광 안내자가 아닌 제자도를 기반한 진정한 순례 동행자이어야 함을 재확인해 준다. 또 내가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에서 경험한 것처럼 온전한 안내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운다. 어디 순례 여정 안내자뿐이겠는가. ‘인스턴트 삶’ 최단 경로만 추구하는 삶으로 가득한 시대 가운데 제자의 도리를 다하려는 이들에게도 책은 귀중한 선생이 돼 줄 것이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나는 뜻밖의 웃음을 얻었다. 유진 피터슨이 원제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설명하며 콧수염쟁이 니체에게 복수 같은 일갈을 가하는 장면 때문이다. 캐나다 리젠트 신학교에 다닐 때 들었던 유진 피터슨의 외침과 걸걸한 웃음소리가 생각났다. 예리한 목소리의 걸출한 영성가는 떠났지만, 그가 생생한 표현으로 쓴 메시지 성경이 담긴 새 버전으로 이 책이 재출간된 것이 반갑다.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살아 있는 책이다. 제자도를 단시간에 성공해야 할 과제가 아닌, 길고 묵직한 ‘한길 가는 여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책을 권한다.

강신덕 목사(샬롬교회·토비아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