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텐트들이 늘어선 이곳은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여기는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이고, 여기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새크라멘토와 오클랜드,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입니다. 모두 미국의 주요 도시들이죠. 전부 비슷한 풍경입니다. 집을 잃고 갈 곳이 없어진 노숙자들이 텐트와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미국답게 규모도 어마어마한, 홈리스들의 집단 야영지입니다.
미국의 홈리스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어서, 그간 홈리스를 줄이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고, 2010년대 중반엔 이런 노력덕에 노숙자가 제법 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다시 이렇게 대폭발 수준으로 폭증하고 있는데요. 대체 미국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짚어볼 대목은, 미국에 유독 홈리스가 많다는 건 사실일까요?
통계를 보면 놀랍게도, OECD에서 인구당 홈리스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입니다. 미국의 2배가 넘죠. 프랑스와 독일도 미국보다 이렇게나 높습니다. 근데도 홈리스 하면 미국이 떠오르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럽 홈리스 상당수도, 실제론 시민단체나 정부에서 제공하는 임시숙소에서 생활하는 명목상 노숙자인 반면, 미국의 홈리스들은 거리에 사는 진짜 노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거리에 방치돼있는데다, 특유의 거대한 규모 때문에, 외부인 눈에 미국의 홈리스 문제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심각해보이는 거죠.
미국 노숙자들이 정부 도움을 받지 못하는 건 미국과 유럽의 복지제도의 차이 때문이지만, 미국의 심각한 마약 문제가 만들어낸 편견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미국의 노숙자 하면 이런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이런 중독자들을 왜 돕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정부가 세금을 쓰는 건 정치적으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전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마약 중독자들일까요?
실제 중독은 미국 노숙자 상당수가 겪는 문제여서, 노숙자 38%는 알코올, 26%는 약물 중독 문제를 겪고 있는 걸로 조사됐으니, 완전히 틀린 얘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얘기도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중독 같은 정신과적 문제를 겪지 않는 멀쩡한 노숙자들이 너무 많거든요. 실제로 2021년 시카고대학 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홈리스의 40~53%는 직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워킹 홈리스인 걸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노숙자의 절반 정도는, 돈을 버는데도, 밤에 잘 곳을 못 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바로 여기에 최근 폭증하는 미국 노숙자 문제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일을 해서 버는 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로, 미국의 집값과 월세가 비싸지고 있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있다는 겁니다.
직장인들은 공중화장실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대학생들은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학교에 다니고, 구직자는 해변가 차량에서 먹고 자며 일자리를 찾습니다. 모두가 월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중독과는 무관한 평범한 미국인들입니다. 통계상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은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쓰고 있었습니다.
주거비로 소득의 절반 이상을 쓰는 가구 비율이, 저소득층의 경우 무려 67%나 됐습니다. 당연히 저축은 생각할 수도 없고, 병이 나서 한두달만 쉬어도, 바로 홈리스로 전락하게 되죠.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집니다.
이건 지난 20여년간의 월세 증가율, 이건 월급 증가율인데, 거의 2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이렇게 월세만 뛰니 버텨낼 도리가 없는 겁니다.
이건 2025년 1분기 샌프란시스코 평균 월세인데, 원베드룸형이 3125달러, 우리 돈으로 440만원쯤 됩니다. 웬만한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닌 거죠. 그렇다면 미국에서 월세는 왜 이렇게 미친듯이 오르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값이 오르는 것과 똑같은 이유, 그러니까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인데, 여기엔 미국만의 특수한 사정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2008년 금융위기입니다. 당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주택담보대출금을 갚지 못한 집주인들이 은행에 집을 대거 압류당하게 되고 이후 집값은 대폭락을 하게 되죠. 당연히 주택시장은 대혼란에 빠졌고, 이후 주택 건설은 한동안 거의 중단되다시피 합니다. 바로 여기 이 구간입니다.
주택 건설 전체가 타격을 받긴 했는데, 그중에서도 서민층과 젊은세대가 살 수 있는 작고 저렴한 주택이 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경기가 회복된 뒤에도 유독 이 부문만은 원래의 공급 규모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첫번째는 미국만의 문제, 미국식 구역 규제의 문제가 있습니다. 원래 구역 규제는 흑인이 이사오는 걸 막기 위해, 지역별로 예를 들어 집을 지으려면 최소 140평에 1세대당 2대의 주차구역을 확보해야 한다든지 하는 식의 엄격한 규제를 만든 것인데요. 대형 단독주택 위주로 허가를 내주는 이런 정책이 저렴한 소형 주택의 신규 건설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했습니다.
두번째는 우리나라도 겪고 있는, 전세계적인 문제인데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값이 오르고, 코로나 이후 장기간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규모가 큰 단독주택이나 럭셔리 아파트 말고는 신규 주택의 공급이 사실상 막혀버렸습니다. 고가 주택이 아니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됐기 때문입니다. 반면 금융위기 당시 일시적으로 줄었던 수요는, 특히 소형 주택을 중심으로, 이후, 꾸준히 증가합니다.
이민자 증가로 인구가 계속 늘고 있는데다, 한 집당 가구원 수는 줄면서 필요한 주택의 숫자가 늘어난 거죠. 현재 미국에서는 400만채 가까이 집이 부족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주택대란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겁니다.
여기에 최종 빌런, 월가 자본이 등장해 상황을 최악으로 이끌어갑니다. 아까 2008년 금융위기로 시장에 싼값에 주택 매물이 쏟아졌다고 했잖아요. 뉴욕타임스 보도로는 2007~2011년 대략 470만 가구가 집을 압류당했다고 하는데, 이때 쏟아진 매물을 쓸어담은 게 월가 큰손들이었습니다. 여기 프레티엄이라는 투자펀드를 운영하는 이 남자 같은 이들이 주인공이죠. 투자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이제 이들이 미국 중산층과 서민들의 새로운 집주인으로 떠올랐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기존의 부동산 개발회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자본이라는 사실입니다. 땅을 확보하고 개발 허가를 얻고 건물을 짓고 수익을 내는 장기적 플랜을 가진, 전통적인 부동산 개발회사들과 달리, 월가 자본은 이미 있는 집을 사들여서 별도의 투자 없이 월세 수익을 짜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빠져나가는, 단기 수익을 노리는 자본입니다.
매년 월세를 올리면서도 비가 새도 집주인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이 여성. 알고보니 집주인은 암허스트라는 텍사스 소재의 민간투자회사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만 1500채가 넘는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관리자도 없는 유령 사무실을 통해 월세만 챙긴 걸로 밝혀졌죠.
일부에선 사람들이 월가의 역할을 과장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기관투자가들의 단독 주택 소유 비율은 3.8% 정도로 큰 편은 아니거든요. 아파트를 포함한 전체 주택 임대 시장에서 차지한 비율은 1% 정도로 더 작죠.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되는 건, 집이란 게 매우 지역적인 시장이라는 사실입니다.
전국의 100만채가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의 100채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진짜 시장이란 거죠. 월가 자본은 이런 주택 시장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서, 특정 지역 주택을 매집해서 사실상의 독과점 시장을 만든 뒤, 시차를 두고 월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이윤을 극대화했습니다.
실제 기관투자가들이 진입한 지역에서는 이렇게 월세가 치솟았고, 주민들의 반발도 커졌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2024년 조 바이든 정부는 투자회사가 월세를 연간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고, 이어서 민주당은 헤지펀드의 주택 소유를 100채로 제한하는 법안을 마련했지만, 전부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월가가 주택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이동주택들이 모인 트레일러파크에서 좀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레일러하우스로 불리는 이동주택은, 집은 거주자 소유지만, 공원부지 같은 남의 땅에 이동주택을 세워두고 거주자가 집세 대신 토지 사용료를 냅니다.
트레일러파크는 그런 이동주택들이 모인 부지를 가리킵니다. 미국 전역에 4만3000개 정도의 트레일러파크가 있고, 이곳에 2200만명 정도가 사는 걸로 알려져있는데, 이게 최근 민간투자회사의 타깃이 되면서, 1200개 정도가 12개의 민간투자회사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이후 투자회사 소유의 부지에선 사용료가 치솟고, 이걸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쫓겨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소유인 집도 버린 채 말입니다. 이동주택이라고는 하지만 집을 옮기는데는 1만~2만 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싼 사용료를 내거나, 아니면 집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겁니다. 한 투자자는 이런 상황을 “트레일러파크를 소유하는 건 손님이 체인으로 묶인 와플하우스를 운영하는 것과 같다”고 묘사했는데요. 마지막 피난처로 여겨지던 이동주택마저 뺏긴 빈곤층은 결국에는 노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무엇보다 싸고 저렴한 주거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모든 걸 전부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이민자가 밀려들어서 미국의 위대한 도시들이 망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민자들도 노숙자 문제를 악화시키는 원인들 중 하나인 건 분명합니다. 특히 뉴욕 같은 도시에서 가족 단위로 노숙하는 히스패닉계가 늘어나는 문제는 대부분 이민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산불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이재민이 늘어난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노숙자가 전부 마약 중독자인 게 아니듯, 노숙자가 전부 이민자라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노숙과 이민과 중독은 서로 중첩되기는 하지만 완전히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원인도 다르고, 해법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거리를 점령한 다수의 노숙자들은,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가난하지만 평범한 미국인들이라는 것. 그게 진실입니다.
문제는 미국인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거겠죠. 그걸 받아들이면 이민자를 탓하는 손쉬운 방법 대신, 근본적인 해법, 그러니까 저렴한 주택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트럼프의 미국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선택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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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전병준 기자 jb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