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정치’에 찌든 국감, 민생은 물 건너갔다

입력 2025-10-15 20:27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한 정책 감사가 기대됐던 이재명정부 첫 국회 국정감사가 낯부끄러운 신경전과 막말로 얼룩지고 있다. 반말은 예사고, 감정 섞인 욕설과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말싸움이 연일 지면을 수놓았다. 국민의 대표들이 국가의 미래를 논의해야 하는 민의의 전당은 의원님들의 저품격 싸움의 전당으로 변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 치도 양보 없는 여야의 극한 대립 구도가 국감장에 그대로 투영됐다고 지적한다. 국감장은 ‘숏폼’(짧은 영상)을 의식한 의원들의 ‘버럭쇼’ 전시장으로 전락했다.

여야 간 난타전은 15일 국회 밖으로까지 확전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과 김우영 민주당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고 경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두 의원은 ‘찌질 문자’ 공방을 벌인 당사자들이다. 김 의원은 전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박 의원에게 지난달 ‘에휴 찌질한 놈아!’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박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문자를 공개했다. 박 의원은 이에 김 의원도 자신에게 ‘찌질한 XX’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폭로했다. 이 ‘찌질한’ 공방에 대해 양당이 자성은커녕 비호에만 나선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논평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그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서 강력하게 제재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여야 대립으로 1년 넘게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 자정 능력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하고, 당 지도부도 더 부추기고 앉아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국감장이 ‘숏폼’(짧은 영상) 제작소로 전락했다는 조소도 나온다. 말초적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숏폼 형식이 인기를 끌자 숏폼용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 교수는 “숏폼 영상 등이 정치권의 기본 문법처럼 자리 잡았다”며 “과격한 행태로 강성 지지층에게 잘 보여 공천을 받거나, 자신의 위상을 키우려는 경향이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욕설 논란이 불거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는 ‘숏폼 정치’에 찌든 대표적 사례다. 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국감에서 성일종 국방위원장을 향해 “내란 수괴를 왜 옹호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성 위원장이 국방부 장관 직속 위원회 명칭에 ‘내란극복’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을 문제 삼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중장 출신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김 의원을 향해 “위원장에게도 질의 권한이 있다”고 고함을 쳤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은 내란당” “왜 지X이냐” “내란이 지X이다” 등 욕설까지 주고받았다. 김 의원은 자신이 성 위원장에게 따지는 모습을 ‘내란이 아니라는 성일종에 팩폭하는 김병주!’라는 제목의 숏츠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채널에 게재했다.

반전은 다음날 나왔다. 한 의원이 14일 “어제 문제가 됐던 의원이 정회 시간에 회의장 밖에서 제게 다가와 웃으며 악수를 청하고 ‘미안하게 됐다. 당직을 맡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원님은 대인이시다’라고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카메라 앞에선 고성과 삿대질, 막말한 뒤 카메라가 없는 장소에서 이율배반적 행동을 보여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으며 비열한 처신에 대해 할 말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이 의도적으로 분란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벌인 ‘조요토미’ 사태도 ‘개딸’ 인지도를 높여 민주당 복당을 꾀하기 위한 무리수란 평가다. 그는 조 대법원장 임명을 “대한민국 대법원을 일본 대법원으로 만들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음모론을 펼친 뒤 해당 숏폼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에 올렸다.


언어의 품격도 추락하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선 여야가 윤석열정부 시절 원전 사업 계약 과정을 두고 충돌하면서 배설물 공방을 벌였다. 김동아 민주당 의원이 “우리 정부는 윤석열정부가 싸 놓은 똥을 치워야 하는 입장”이라고 언급하자,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정부가 똥을 싸고 있다”고 받아쳤다.

최수영 평론가는 “정치 유튜브가 막장 국감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며 “여야 할 것 없이 유튜브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는 사람이 공천을 받고, 극언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투입되니 악순환에 갇히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도 민생 국감은 기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한탄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유튜버와 강성 지지층만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 세태가 위험한 수준에 와 있다고 본다”며 “국회 내부의 관용이나 절제 정신은 전혀 없는 것 같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양당 내에서도 자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의원은 “고성이 난무하는 법사위의 행태도 몹시 부끄러운데, 과방위의 ‘찌질’ 공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며 “대한민국 국회가 기능은 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거의 시정잡배 싸우듯 하는 게 국감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정우진 이강민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