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지역의 스토리텔러이자 도전 인큐베이터로”

입력 2025-10-15 17:28
고두환 위기브 대표가 고향사랑기부제의 제도적 의미와 민간 플랫폼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위기브 제공

고향사랑기부제가 3년 차를 맞았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현재 거주하는 주소지 외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고, 세액공제와 함께 답례품을 받는 제도다.

이 제도의 취지는 현장에 얼마나 녹아들었을까. 고향사랑기부제 전용 민간 플랫폼(온라인 기부 시스템) ‘위기브(WeGive)’를 운영하는 고두환(41) 대표는 15일 “이 제도는 지방재정의 숨통을 틔우는 동시에 지자체가 시장경제 감각을 익히는 학습장”이라며 “나아가 지역의 컬러(색깔)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러이자,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는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이날 국민일보와 만나 앞서 고향사랑기부제를 도입한 일본의 선행 사례와 우리 제도의 강·약점, 아울러 민간의 역할을 제시하면서 이 제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위기브 제공

고 대표는 제도를 앞서 도입한 일본의 사례를 먼저 꺼냈다. “일본은 2006년 입법, 2008년 시행으로 고향세를 정착시켰습니다. ‘인구 데드크로스(출생자수 < 사망자수)’와 지방 소멸이 현실화되자 ‘세금의 자발적 이전’으로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를 누그러뜨리고, 지자체가 스스로 색깔을 갖도록 유도했죠.”

우리나라는 2023년 시행령 정비 이후 본격 가동됐다. 그는 “정치권에서 여야가 뜻을 모은 드문 제도”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행정안전부(행안부)가 비교적 빠르게 규제 혁신을 진행했고, (재정 상황이) 절박한 지자체일수록 현장 도입 속도가 빨랐다”고 평가했다.

제도 정착 과정에서 민간 플랫폼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고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민간 모금액이 약 55억 원인데, 그중 위기브가 약 45억 원을 모금했다. 민간 전체 모금액의 82%에 달한다. 고 대표는 “당시 위기브와 계약한 지자체는 20곳이 채 안 됐지만, 다수 지역이 광역·기초 단위 1위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고향사랑기부제의 '지정기부'. 위기브 제공

올 들어 위기브와 계약한 지자체는 50여 곳으로 늘었다. 고 대표는 성과의 배경으로 ▲일본 운영 경험과 사회적기업으로서의 모금·운영 노하우 ▲지자체 업무 이해와 대행 역량(업무툴·CS·답례품 등록·홍보 지원) ▲대중·기업과의 신뢰구축 등을 꼽았다. 그는 “민간은 ‘모금-정산-답례품-홍보’의 전 과정을 기민하게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제도 취지와 현장 실행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게 민간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고향사랑기부제 도입에 따른 지역 현장의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전남 영암·곡성은 20년 만에 소아과를 열었고, 광주광역시 동구는 유기견 보호센터를 마련했습니다. 중증 자폐 야구단은 사회 훈련을 통해 취업으로 이어졌고, 강원도 양구는 태풍으로 발생한 낙과를 식초·사이다·주류로 가공해 농가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연간 800억~900억 원 수준의 모금이라도 쓰임새가 구체적이고 내실이 있다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고 대표는 말한다.


선행 경험이 있는 일본과 비교했을때 우리나라 고향사랑기부제의 과제도 드러난다. “일본은 원스톱 특례 등 결제·선택이 매우 직관적입니다. 반면 우리는 회원가입→기부→포인트→답례품 선택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아직 복잡합니다. 다만 행안부의 규제 개선 속도는 빠른 편이고, 민간 UI(이용자 인터페이스)·UX(이용자 경험) 혁신이 결합되면 일본을 추월할 여지가 있습니다.”

공제 체계와 참여 장벽은 단기 과제로 꼽았다. “지난해 기준으로 급여생활자 참여율은 5% 미만으로 추산됩니다. 공제 한도·방식이 더 촘촘해지고, 계좌이체 등 익숙한 결제경험이 열리면 참여가 넓어질 겁니다.”

고 대표는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고향사랑기부제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핵심은 지자체의 자생력입니다. 모든 지역이 수도권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각 지역이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시니어 친화 도시’ ‘소·부·장 특화 도시’처럼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사람들은 생애주기마다 적합한 지역을 순환하며 살아가는 그림이 현실적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의 색깔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러이자,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는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고두환 위기브 대표는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의 색깔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러이자,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는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도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실패의 비용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중앙정부의 대형 재정사업 안에서 실패하면 정치적 부담이 큽니다. 반면 민간 플랫폼 안에서는 작은 실험과 실패가 충분히 용인됩니다.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무엇을 확장할지 결정할 수 있죠. 이것이 정부의 한계를 민간이 보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디지털 개방 서비스 체계 안에서의 협업도 주문했다. “정부망과 민간 플랫폼이 병렬로 경쟁하고, 표준을 공유하며, 사용자 경험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길 바랍니다. 민간이 앞서 설계하고 현장을 달리며 쌓은 시행착오를 제도 개선에 연결하면, 공공은 안정성과 신뢰성을, 민간은 속도와 혁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고 대표는 지역 활성화의 본질을 ‘자부심’에서 찾았다. “지역에 대한 자존감은 단지 소득 격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가 지향하는 목표와 철학이 분명하고, 거기에 시민이 참여할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답례품을 넘어 그 통로를 만드는 제도입니다.”

그는 이어 “제도 시행 3년 차인 지금, 공공의 신뢰성과 민간의 속도가 합쳐지면 변화는 훨씬 빨라진다”면서 “각 지역이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고 시민이 그 색깔을 선택해서 응원할 때, 기부는 ‘답례품’이 아니라 ‘미래’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이은철 기자 dldms878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