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 갈등 앞 세계 교회, 분열과 저항 사이 길 모색

입력 2025-10-15 15:19 수정 2025-10-15 16:02
14일부터 경기 여주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제8회 한국글로벌선교지도자포럼(KGMLF)에서 패널 토의가 진행되고 있다. KGMLF 제공

미국 연합감리교회(UMC)에서는 동성애 금지 교리 삭제로 7660개 교회가 교단을 떠났다. 동성 커플 축복 기도를 허용한 영국 성공회에서는 보수적 신앙을 지키는 교회들이 18세 미만 청소년의 53%를 담당하고 있다. 우간다 교회는 동성애를 처벌하는 국가의 법 제정을 지지하며 서구의 흐름에 맞서고 있다.

‘성 정체성과 동성애 논쟁’을 둘러싼 세계 교회의 각기 다른 현실이 14일부터 4일 간 경기 여주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제8회 한국글로벌선교지도자포럼(KGMLF)에서 다뤄졌다. KGMLF는 김진봉 대표가 미국 OMSC 재직 시절 주도해 2011년 시작하고 이후 온누리교회 등이 후원하고 있는 초교파적 격년제 국제 포럼이다.

넬슨 제닝스 GMLF 이사장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포럼의 목표가 “하나의 ‘선언문’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날카롭게 다듬는 것’”이라고 밝혔다. 각국의 현실이 다르기에, 질문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성 정체성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정죄감만 느끼고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이다. 반면, 많은 한국 교회의 질문은 ‘법적, 사회적 변화로부터 어떻게 한국을 보호할 것인가’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포럼에서 서로 다른 맥락과 그 맥락 속의 다른 질문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구 교회의 ‘분열’과 비서구의 ‘저항’

포럼에서는 각국의 다른 현실이 구체적인 사례로 공유됐다. 첫 발제자로 나선 에이미 아담첵 미국 존 제이 칼리지 사회학과 교수는 “1인당 GDP가 높은 국가일수록 동성애에 대해 더 관대한 경향이 있지만, 한국은 이 일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는 독특한 사례”라며 “기독교가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14일부터 경기 여주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제8회 한국글로벌선교지도자포럼(KGMLF)에서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서서 찬양을 하고 있다.

미국 코네티컷 글로벌중앙감리교회 김정환 목사는 미국 연합감리교회(UMC)의 분열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UMC는 교단 헌법에 ‘동성애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다’는 문구를 삭제하기로 결정하자, 이를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판단한 보수적인 교회들의 이탈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 2023년 말까지 교단 전체 교회의 25%에 달하는 7660개 교회가 교단을 떠났다고 전했다.

영국 ‘리빙 아웃’ 사역 대표인 에드 쇼 목사는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연합으로 규정한 공식 교리와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목회자들이 존재하는 비공식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가 교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쇼 목사는 “보수적 신앙을 지키는 복음주의 연합체 소속 성직자들이 영국 성공회 전체 18세 미만 주일학교 출석 인원의 53%를 담당하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기보다 성경의 기준을 고수할 때, 오히려 다음 세대에게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구 교회가 내부 분열로 신음하는 동안, 비서구권 교회들은 다른 형태의 고민과 마주하고 있었다. 우간다 기독교 대학교수인 데이비드 오모나 박사는 자국의 강경한 반동성애 입장을 설명했다. 우간다에서는 영국 식민 시절 제정된 1950년 형법과 최근의 2023년 반동성애법 등에 따라 동성애 행위가 법적으로 처벌받는다. 그는 이러한 법적 배경에는 “서구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심리가 깊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사법부의 판결로 2007년 동성애가 합법화된 네팔의 상황은 또 다른 목회적 고민을 안겨주고 있었다. 네팔 신학대학 학장인 발 크리슈나 샤르마 박사는 힌두교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소수 종교인 교회가 어떻게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할지를 설명했다. 그는 “교회의 해법이 단순히 사회적 반대가 아니라, 성 정체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한 ‘포용적인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신학적 씨름, 성경으로 돌아가다

이처럼 각기 다른 성 정체성 담론에 대한 현실의 고민들은 결국 ‘성경을 오늘 어떻게 읽고 적용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모였다. 이번 포럼에서 소개된 크리스 라이트 박사와 월터 모벌리 박사의 대담이 신학적 해석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보여준다. 라이트 박사는 존 스토트 목사가 설립한 랭함 파트너십 인터내셔널의 글로벌 대사이자, 세계적인 복음주의 구약학자로 평가받다. 영국 더럼대학교 신학과 성서해석학 명예교수 모벌리 박사는 구약 해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라이트 박사는 논의의 출발점부터 명확히 했다. 그는 성 정체성과 관련한 논의에 대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인간을 만드신 그 형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성경의 가르침은 개별적인 금지 조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 주신 ‘창조 질서’라는 기준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레위기 18장과 20장에서 남성 간의 동성 성행위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 “창조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경계선을 설정하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4일부터 경기 여주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제8회 한국글로벌선교지도자포럼(KGMLF)에서 강연자가 발표하고 있다. KGMLF 제공

반면 모벌리 박사는 성경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점은 맞지만, 그 금지 조항의 ‘성격’을 깊이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레위기의 동성애 금지(히브리어 ‘토에바’)가 왜 금지되는지에 대한 보편적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보편적 도덕률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금기, 즉 ‘타부(taboo)’의 성격이 더 강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고대의 특정 금지 조항을 오늘날 전혀 다른 문화 속 기독교인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라이트 박사는 ‘토에바’가 단순히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위한 문화적 금기가 아니라, 살인이나 불의처럼 하나님께서 보편적으로 가증히 여기시는 심각한 도덕적 범죄를 의미한다고 반박했다.

김진봉 GLMF 대표는 이처럼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이유에 대해 “교회가 준비하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네팔의 사례처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가 변해버리면 교회는 속수무책이 된다”며 “2023년 환경 문제를 처음 다룰 때도 저항이 있었지만, 꾸준히 논의하니 인식이 바뀐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문제일수록 교회가 먼저 고민하고 길을 찾는 것이 세상에 대한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여주=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