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교민회 “올해만 ‘탈출 청년’ 70여명 귀국 도왔다”

입력 2025-10-15 15:02 수정 2025-10-15 16:30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사역하는 A선교사는 지난달 우연히 주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 앞을 지나다 초라한 행색의 한국인 청년을 만났다.

20대 후반의 청년 B씨는 누가 봐도 어딘가에 억류돼 있다 탈출한 모습이었다. 일자리가 있다는 소개를 받고 캄보디아에 입국한 직후 사흘 동안 억류돼 있던 B씨는 어느 날 새벽 2시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해 앞만 보고 1시간 30분을 달린 뒤 우여곡절 끝에 대사관이 있는 프놈펜 시내까지 왔다고 했다. 결국 A선교사는 대사관과 협력해 임시 여권과 비자 발급, 한국으로 돌아가는 편도 비행기 표 마련 등을 도왔고 이 청년은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15일 이 같은 소식을 국민일보에 전한 최수철 캄보디아 선교사는 “처음 들으면 놀랄만한 일이겠지만 캄보디아에선 워낙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고 했다.

한국인을 겨냥한 고수익 취업 미끼 범죄가 이어지는 캄보디아에선 범죄 조직이 한국인 피해자의 여권·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보이스피싱과 투자사기 등에 동원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폭행과 감금, 협박 등이 이어지고 있다. 범죄가 이어지자 정부도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는 것과는 달리 정작 현지 교민과 선교사들은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옥해실 캄보디아한인회 부회장은 “그동안 선교사는 물론이고 교민회도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연루된 한국인 청년들의 귀국을 꾸준히 돕고 있다”면서 “올해만 해도 대사관 등과 협력해 70여명을 인천행 비행기에 태웠다. 선교사 등을 통한 귀국 지원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옥 부회장은 교민이나 관광객이 별안간 납치된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민회가 파악하기에는 갑자기 관광객이 납치되는 등의 예상 밖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니”라면서 “캄보디아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범죄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처럼 오도되는 게 무척 조심스럽다. 보이스피싱 등 범죄를 매개로 벌어지는 특수한 사건”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자칫 캄보디아에 반한 감정이 고조될까 우려스러운데 교민의 일상을 지키는 일과 한국인 억류·고문 등의 범죄 해결이 동시에 진행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프놈펜에서 24년 동안 사역하고 있는 김태권 캄보디아한인선교사회 회장도 “한국인을 억류해 범죄에 악용하고 고문까지 하는 범죄는 속히 근절돼야 하나 이분들이 한국에서 출국할 때부터 일반적인 관광을 하러 오는 분들은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면서 “마치 프놈펜이 범죄의 온상으로 비치는 건 큰 문제다. 마치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이 생지옥에 사는 것처럼 비치는데 전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실제 캄보디아한인회는 지난 13일 발표한 성명에서 “온라인 사기 범죄 근절을 위해 양국 정부가 공조해 달라”면서 “범죄에 연루된 한국인을 ‘수사를 위한 열쇠’로 규정하고 이런 범죄 근절에 힘써 달라. 범죄 연루자 강제 출국과 재입국 차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선교사도 “억류됐던 한국인이 탈출하면 이들을 프놈펜으로 데려와 교민과 선교사들이 돌보면서 대사관과 협력해 귀국시키는 일을 이미 2~3년 전부터 해왔다”면서 “한국 정부가 캄보디아 구인광고를 함부로 못 하게 하는 규제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최근 캄보디아가 범죄의 온상인 것처럼 알려지면서 캄보디아를 방문하려던 교회들이 일정을 취소하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미 여러 교회가 캄보디아 방문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현지 선교사들은 기도를 부탁했다. 1960~70년대 킬링필드 거치며 지식인층이 부재하고 범죄도 확산하는 캄보디아에는 그럴수록 선교가 절실한 땅이란 점을 이해하고 기도로 동역해 달라고 요청했다. C선교사는 “선교팀의 걱정이 큰 건 이해한다”면서 “다만 범죄에 실제로 관계된 몇몇 연루자만 위험한 것이지 한국인에 대한 납치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없다”고 조언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국내 캄보디아 공동체와의 교류 등도 추천했다.

장창일 김아영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