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도 마침내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다. 국내 최초로 AI 기술을 활용한 장편 영화가 나왔다. 15일 CGV에서 개봉하는 ‘중간계’는 여러 종류의 크리처(괴수)와 차량 폭파, 건물 붕괴 장면 등을 AI로 구현했다. 연출을 맡은 강윤성 감독은 “AI가 위축된 영화 산업에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강 감독은 “AI 기술을 접목한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실증하고 싶었다”며 “시도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도 없기에 누군가는 해야 했다. 선구적 시도인 만큼 긍정적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범죄도시’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 ‘파인: 촌뜨기들’ 등을 만들어 온 그는 이번 작품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불법으로 수천억원을 번 재력가(양세종)를 둘러싸고 각기 다른 목적으로 모인 국정원 요원(변요한)과 경찰(김강우), 배우(방효린), 방송국 시사교양 PD(임형준)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사망 전 가상 세계인 ‘중간계’에 갇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기술 구현이 중요한 작품이기에 AI 미디어 제작 기업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의 권한슬 대표가 AI 연출을 따로 담당했다.
AI 크리처들은 컴퓨터그래픽(CG) 작업물에 비해 다소 어색하고 이질적으로 보인다. 강 감독은 “큰 스크린으로 보니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재 가능한 기술로는 최대치의 완성도라고 자부했다. AI 연출을 맡은 권 대표는 “AI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매달 달라지는 상황”이라며 “2년 내 기술 정점이 오리라 예상하는데 그땐 실사와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강 감독은 “CG로 작업할 때는 4~5일 걸리는 차량 폭파 장면을 AI로 만들면 1~2시간 만에 끝난다”며 “이 영화 촬영을 지난 5월 시작했는데, 이렇게 빨리 개봉하는 게 기존 방식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전통적인 CG 방식으로 제작했다면 후반 작업만 1년 가까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CG와의 차이는 또 있다. CG를 입히려면 배우가 그린스크린 앞에서 연기해야 하지만, AI로 작업할 때는 AI 생성을 위한 소스가 필요해 오히려 현장 촬영이 필수다. 강 감독은 “배우들이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한 질문이 ‘여기까지만 해도 되냐’는 것이었다”면서 “AI 크리처는 후반부 동작을 스스로 합성하기 때문에 배우가 끝까지 연기하지 않아도 됐다”고 전했다.
강 감독은 다만 “배우의 영역을 AI가 대체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개개인이 크리에이터인 배우가 표현하는 감정을 AI로 전달할 순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짧은 AI 동영상을 봐도 영상 속 인물에게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적 면모가 없기 때문”이라며 “AI 기술은 철저히 창작 도구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영화 산업 활성화다. 강 감독은 “영화 시장이 침체하면서 작품을 기획해도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며 “AI 영화의 성공 사례가 나오면서 투자 자본이 유입되고 제작이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제작 패러다임이 바뀔 뿐 관객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관객은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할 뿐”이라며 “결국 독창적 이야기를 정교하게 만드는 창작가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