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방 한 칸에 살다가 이제 곧 새 아파트로 갑니다.”
서울 남대문 쪽방촌 주민 권모씨는 상기된 목소리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14일 쪽방촌 옆에 건립된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면서 “인생 처음으로 새 건물에서 살아본다”며 “마음이 둥둥 뜬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날 권씨를 포함해 서울역과 남산 사이 이른바 ‘남대문(양동) 쪽방촌’ 주민 142세대가 공공임대주택 ‘해든집’으로 이주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남대문 쪽방촌은 한국전쟁 이후 판자촌이 형성된 지역이다. 해든집은 ‘해가 드는 집, 희망이 스며드는 집’이란 뜻으로 2021년 12월 정비계획 결정 후 기부채납을 받아 4년 만에 준공됐다. 총 18층 건물에 지상 6층~18층은 임대주택 해든집으로 사용하고, 지하 3층~지상 5층은 남대문쪽방촌상담소를 비롯한 사회복지시설과 편의시설로 활용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해든집은 ‘민간 주도 순환정비’의 첫 사례다. 개발 대상지에 대한 일괄 전면 철거나 입주민 강제 이주 방식이 아닌 이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먼저 마련하고, 이주가 완료되면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선(先) 이주, 선(善) 순환’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이 같은 방식은 추가 비용 발생과 정비기간 장기화로 사업시행자가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자치구, 사업시행자, 전문가 등과 여러 차례 논의와 쪽방 주민 의견 수렴을 거쳐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는 방안을 끌어냈다고 설명했다.
현재 ‘영등포쪽방촌’도 이와 유사한 순환개발 방식으로 정비를 진행 중이다. 쪽방 주민들이 타 지역이 아닌 현재 거주 지역 내 임대주택이 공급되면 이주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해든집 입주민의 생활 변화 등에 대한 연구 용역을 추진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른 지역 쪽방 밀집 지역 주민들의 안정적인 주거환경 조성과 기반 마련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날 해든집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해든집은 강제 퇴거 없는 약자와의 동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거 공간”이라며 “도시의 성장 속에서도 소외되는 이웃이 없도록 누구에게나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는 서울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