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하, 전 세계 공연 축제가 러브콜 보내는 ‘씨어터 메이커’

입력 2025-10-13 16:48 수정 2025-10-13 16:57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협력예술가인 구자하는 극작가, 연출가, 작곡가, 퍼포머, 비디오그래퍼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씨어터 메이커’다. (c)서울국제공연예술제

흔히 한국 연극은 언어 장벽 때문에 해외 진출이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유럽을 기반으로 한국어로 연극을 만드는 구자하는 전 세계 공연 축제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가 앞서 선보인 ‘롤링 앤 롤링’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는 27개국에서 300회 넘는 공연을 했다.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신작 ‘하리보김치’(16~19일 대학로극장 쿼드)를 선보이기 위해 내한한 구자하는 13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요즘 국제 공연 축제들은 자막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어서 언어 문제에 따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서 “내 작업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끄럽지 않은 영어 발음 자체가 제 정체성과 예술적 맥락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극은 정치적 예술이라는 게 내 믿음이다. (구체적인 언어와 상관없이) 작품의 메시지를 통해 통해 관객과 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통적인 연극의 틀에서 벗어나 음악, 영상, 텍스트,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한 연극을 선보인다. 비연극적인 요소들을 연극의 영역에 유입시키는 한편 직접 퍼포머로도 나서는 그를 지칭하는 용어는 ‘씨어터 메이커’(theater maker, 연극 만드는 사람)다. 그는 “내 작품은 동시대(컨템포러리) 공연예술 또는 아방가르드 연극으로 불리는 영역에 속한다”면서 “해외에선 내 작업을 ‘하이브리드 연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디음악 분야에서 전자음악 작곡가 겸 DJ로 활동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이론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부터 국내 공연계의 주류인 전통적인 연극 작업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그는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 암스테르담 예술대학에서 현대연극 연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사회의 영어를 향한 집착과 영어 제국주의의 무의식을 다룬 데뷔작 ‘롤링앤롤링’은 2014년 대학원 작업의 일환으로 발표됐다. 당시 유럽 공연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여러 공연 축제의 초청을 받게 됐다.

구자하의 신작 ‘하리보김치’. 포장마차 뒤에 서 있는 사람은 구자하이고, 앞에 앉은 두 명은 공연 중 무대에 불려온 관객이다. (c)Bea Borgers47

‘롤링앤롤링’을 계기로 그는 현대 공연계의 파워하우스인 ‘캄포’(CAMPO)의 레지던트 아티스트가 됐다. 캄포는 벨기에 겐트에 소재한 공연장, 제작사, 에이전시, 레지던시 기관이다. 이후 그는 압력밥솟을 로봇 퍼포머로 만들어 경제적 주권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로 풀어낸 ‘쿠쿠’(2017년 오스트리아 슈타이리셔 헤르프스트 페스티벌 초연)와 서양 연극을 수용하고 모방하며 형성된 근현대 한국 연극의 역사를 다룬 ‘한국 연극의 역사’(2020년 독일 함부르크의 캄프나겔 여름 축제 초연)를 차례차례로 선보였다. 그가 신작을 올릴 때마다 15개가 넘는 전 세계 주요 공연 축제가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하마티아 3부작’으로 불리는 전작들은 구자하 본인의 기억이나 경험에서 출발해 동아시아의 정치적 지형과 식민지 역사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다룬 것이 특징이다. 이미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신작 ‘하리보김치’ 역시 김치와 젤리 등 음식을 통해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디아스포라를 탐구했다. 그는 “작가이자 퍼포머로서 관객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그러다보니 내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서도 “한국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해외 투어를 하다보면 관객들은 한국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로 해석하고 이해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차기작은 2027년 초연 예정인 ‘본투비 K투비 팝’이다. 최근 세계 대중음악계에 주류로 올라선 K팝의 이면을 다룰 예정이다. 그동안 혼자서 출연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 그는 출연하지 않고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할 예정이다. 그는 “그동안 중소형 규모의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부터 대규모 작품이 될 것 같다”면서 “규모와 상관없이 제 작업은 동시대성을 담은 연극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야말로 연극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