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204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마스터스 1000 대회 단식에서 역대 가장 낮은 랭킹의 챔피언이 나왔다. 무명 선수 발렌틴 바체로(모나코·26)가 ‘전설’ 노바크 조코비치(5위·세르비아) 등을 모두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바체로는 12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롤렉스 상하이 마스터스 단식 결승에서 아르튀르 린더크네시(54위·프랑스)에게 2대 1(4-6 6-3 6-3) 역전승을 거뒀다. 200위대 선수가 마스터스 1000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사상 처음이다. 그는 ATP 타이틀을 따낸 첫 모나코 선수라는 기록도 남겼다.
26세의 무명 선수 바체로는 이전까지 투어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 그런 탓에 애초 이번 대회 예선 명단에 들지 못했고 두 명의 선수가 기권한 후에야 간신히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곤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이번 대회 9경기 중 6차례나 역전승을 거뒀다. 특히 8강에서 홀게르 루네(11위·덴마크)를 제압한 데 이어 준결승에선 역대 대회 최다(4회) 우승자인 조코비치를 2대 0(6-3 6-4)으로 완파했다.
결승에선 한 편의 가족 드라마가 펼쳐졌다. 결승 상대인 린더크네시는 어릴 적 함께 테니스를 배우며 자랐던 사촌이다. 그 역시 2021년 US오픈 챔피언인 다닐 메드베데프(18위·러시아)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결승에 올랐다. 대학교에서 동료로 함께 뛰었던 이들이 처음으로 프로에서 맞붙었다. 가족 간 결승전이 열린 건 1991년 시카고 오픈에서 존 매켄로가 형 패트릭을 꺾은 이후 처음이다.
바체로는 우승을 확정한 뒤 믿을 수 없는 듯 얼굴을 감싸며 “방금 일어난 일은 비현실적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겠다”며 “한 명의 패자가 있어야 하지만 오늘은 두 명의 승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족이 이겼다”고 말했다.
이번 우승으로 바체로는 164계단 상승한 40위로 올라서게 된다. 생애 첫 상위 100위 입성이다. 그동안 최고 순위는 110위에 그친다. 또 상금 112만4380달러(약 16억617만원)를 받게 되는데, 이제껏 바체로가 받은 총상금(59만4077달러)의 배에 달하는 규모다. 바체로는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토너먼트에 출전할 생각조차 없었다”며 “시즌이 끝나기 전에 상위 100위에 든다는 작은 목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