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등 재판에서 12·3 비상계엄 당일 대통령실 CCTV 영상이 일부 공개됐다. 해당 영상은 군사기밀로 분류된다.
재판부는 CCTV 재생이 끝난 후 한 전 총리를 향해 비상계엄 상황에서 국민을 위해 어떤 조처를 했는지 물었고, 한 전 총리는 국무위원으로서 계엄 선포에 반대했다고 답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13일 한 전 총리 내란 우두머리 방조,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 사건 2차 공판에서 해당 CCTV 증거조사를 진행했다.
내란특검은 CCTV 영상을 일부 공개해도 된다는 대통령 경호처 공문을 토대로 재판부에 증거조사 중계를 요청, 허락을 받았다.
특검은 지난해 12월 3~4일 대통령실 5층 대접견실 내부와 외부 복도 등이 촬영된 CCTV 영상 중 주요 부분을 선별해 재생하는 방식으로 증거조사를 약 50분 동안 진행했다.
특검이 확보한 영상은 총 32시간 분량이지만, 재판 효율성을 위해 공소사실과 관련된 부분만 편집한 후 파워포인트(PPT)에 정리한 것이다.
공개된 영상엔 비상계엄 당일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 장소에 놓여있던 계엄 관련 문건을 챙겨 나오고 다른 국무위원과 이를 돌려보는 모습 등이 담겼다.
영상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3일 밤 9시10분쯤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들은 뒤 대접견실로 들어왔다.
당시 한 전 총리 손엔 문건이 2개 있었고, 밤 9시47분쯤 한 전 총리와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 등이 이 문건들을 돌려 읽었다.
밤 10시44분쯤엔 한 전 총리가 상의 안 주머니에서 또 다른 문건을 꺼내 읽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특검은 “김용현 전 장관이 총리에게 특별지시사항 문건을 줬다고 했다”면서 “해당 문건이 대통령의 특별지시사항이 담긴 문서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또 CCTV에서 한 전 총리가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미리 알고 있던 정황도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후 대접견실에 들어와 참모들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곤 밤 10시42분쯤 집무실로 떠났는데, 이 과정에서 이상민 전 장관에게 전화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특검은 이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단전·단수 조치를 확실히 하란 의미로 전화 모양 손동작을 보였고, 한 전 총리는 이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국무위원들이 대접견실에서 모두 퇴실하고 난 뒤인 밤 10시49분쯤 한 전 총리가 퇴실하려는 이 전 장관을 붙잡고는 16분 동안 서로 가진 문건을 돌려보며 협의했다.
강의구 전 실장이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인 12월 4일 새벽 5시18분쯤 결재판을 들고 한 전 총리에게 다가가는 등 계엄 선포 문서를 사후에 작성하려 한 듯한 장면도 담겼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지난 2월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나와 “김용현 전 장관이 이상민 전 장관에게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건네주는 걸 본 적 없다”고 위증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12월 3일 밤 10시16분쯤 김 전 장관이 비상계엄 문서를 건네줬고, 한 전 총리가 이를 목격했음이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CCTV엔 한 전 총리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출석 독촉 전화를 하는 듯한 모습,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 전 총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에 한 전 총리가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장관, 송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에게 사후 부서를 권유하는 듯한 모습도 담겼다.
한 전 총리는 해당 영상을 두고 “기억이 없는 부분도 있다. 변호인과 상의해서 (의견을) 말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를 향해 “비상계엄 그 자체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당시 많은 경찰과 무장 군인이 투입된 점이 확인됐다”며 “그런 상황에서 국무총리였던 피고인이 국민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한 전 총리는 “전체적인 계획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고, 대통령 집무실에서 비상계엄이 경제나 대외 신인도 등에 상당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반대했다”고 답했다.
이어 “더 많은 국무위원이 모이면 모두가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고, 국무위원들끼리 좀 더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해서 국무위원들로 하여금 모인 자리에서 좀 더 확실히 의견을 얘기하도록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재판부는 “무장 군인들이 출동해 국민과 대치했는데 그걸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했는지 묻는 것”이라며 재차 물었고, 한 전 총리는 “국무위원에게 주어진 국무회의라는 것을 통해서 본인들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의 일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당시 국무총리로서 윤 전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남용을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내란을 방조한 혐의로 지난 8월 29일 불구속 기소됐다.
한 전 총리는 또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후 선포문을 작성·폐기한 혐의, 헌법재판소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나와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위증한 혐의도 받는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