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균기자의 골프장 산책]2025 블랙스톤 골프클럽 이천, ‘100년의 영화’를 담보하다

입력 2025-10-13 10:27 수정 2025-10-13 11:26
드론으로 촬영한 블랙스톤 이천 코스 전경. 블랙스톤 이천

남자 골프 전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미국)과 리 웨스트우드(영국)를 비롯해 ‘PGA 챔피언스투어 강자’ 미구엘 앙헬 히메네스(스페인), ‘마스터스 챔피언’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골프 레전드들이 극찬한 국내 골프장이 있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블랙스톤 골프클럽 이천(이하 블랙스톤 이천)이다.

이 골프장은 회원제인 북코스(3619야드)와 동코스(3608야드), 비회원제인 서코스(3695야드) 등 총 27홀로 조성됐다. 2010년 개장 이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유럽프로골프투어(현 DP월드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을 개최하면서 국내를 너머 글로벌 골프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2011년 발렌타인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웨스트우드는 당시 우승자 인터뷰에서 “코스가 원형 자연을 최대한 살린 채 만들어진 게 인상적”이라며 “한 순간도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 코스다. 이처럼 변별력을 요하는 골프장은 흔치 않다. 그래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당시 대회에서 4위에 입상한 존슨도 “한국에서 열린 대회는 첫 출전이다. 당연히 한국 골프 코스에서 라운드도 처음”이라며 “블랙스톤 이천은 코스 레이아웃과 관리 등 전반적으로 세계 유수의 명문 코스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고 엄지척을 해보였다.

다른 출전 선수들도 “사려깊게 쳐야하는 익사이팅 코스”라고 이구동성으로 블랙스톤 이천에 대해 평가했다.
블랙스톤 이천 9번 홀. 블랙스톤 이천

디자인 ‘명인’ 코스텔로의 최고 걸작품
그렇다. 블랙스톤 골프클럽 이천은 이들의 평가처럼 개장하자마자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돼 비회원의 입장이 제한적임에도 골퍼들 사이에서 ‘꼭 한 번 라운드 해보고 싶은 골프장’으로 회자되는 곳이다.

국제적 토너먼트 코스로 전혀 손색이 없는 빼어난 코스 레이아웃에다 차원이 다른 그린, 그리고 최상의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골프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다.

모름지기 골프 코스는 누가 설계했느냐로도 그 진가를 가늠할 수 있다. 블랙스톤 이천은 미국골프코스설계가협회(ASGCA) 회장직을 맡고 있는 브라이언 코스텔로가 맡았다. 그의 설계 철학은 멋진 플레이를 유도하는 ‘와우 팩터(wow factor)’와 유행을 타지 않는 ‘모던 클래식(modern classic)’으로 정의된다.

코스텔로가 설계한 대표적 코스는 블랙스톤 이천의 형님격으로 2005년에 개장한 블랙스톤 제주, 미국 메릴랜드주의 위스키클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헤리티지클럽, 브라질 파젠다골프클럽, 일본 가고시마의 골든팜CC, 중국 하이난의 블루베이 등이 있다.

코스텔로는 그 중 블랙스톤 이천에 대해 “모든 수준의 골퍼들이 즐길 수 있도록 수 백년 전통의 골프 전략과 철학을 바탕으로 조성됐다”라며 “이른바 ‘thinking golfer’의 플레이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코스”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블랙스톤 이천은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요구하는 코스로 보면 된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40m일 정도로 완만한 구릉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나 그 어떤 코스와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은 다이내믹한 코스다.

다시말해 변별력 지수가 아주 높은 코스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정확한 핸디캡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이 곳에서 라운드를 해볼 것을 강추한다.
잔디 교체로 페어웨이가 양탄자로 변한 블랙스톤 이천 서코스 6번 홀 전경. 블랙스톤 이천

중지로 교체해 상전벽해가 된 페어웨이
블랙스톤 이천은 이 같은 명불허전 하드웨어와 언터처블 소프트웨어로 개장 이후 10여년간 영화를 누렸다. KPGA투어 KB금융 리브챔피언십을 2018년부터 6년간, K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KB금융 스타챔피언십을 2017년부터 올해까지 9년간 개최한 것으로 그것은 입증된다.

그러나 최근 수 년간 그 명성에 심각한 생채기가 났다. 기록적 폭염과 가뭄으로 대변되는 이상 기후로 매년 혹서기만 되면 켄터키블루그래스의 페어웨이가 심각한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가며 관리를 해도 별반 소용이 없었다.

블랙스톤 이천의 명성에 크나큰 오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고심끝에 올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27홀 코스 전체 페어웨이와 러프 초종을 기존 켄터키블루그래스에서 중지로 교체키로 한 것. 그리고 총 공사비 85억원(영업 손실액 20억원 포함)을 들여 지난 1월에 공사를 시작해 5월에 마무리했다.

결과는 대성공, 대만족이었다. 회원은 말할 것도 없고 프로 선수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특히 잔디 교체 이후 공식 대회로는 처음으로 치러진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 출전한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확 달라진 코스 컨디션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대회 2연패에 성공한 유현조(20·삼천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코스”라며 “중지로 바뀌면서 더 좋아하게 됐다. 무엇 보다도 페어웨이 잔디 밀도가 균일해 일관성 있는 샷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유현조와 끝까지 우승 경쟁을 펼쳤던 노승희(24·요진건설)와 이가영(26·NH투자증권)도 이구동성으로 “중지로 바뀌면서 코스 컨디션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완연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블랙스톤 이천 북코스 4번 홀. 블랙스톤 이천

잔디 교체로 ‘소홀(疏忽)’에서 ‘황홀(恍惚)’로
이들의 평가가 절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는 건 실제 라운드를 해보면 공감이 된다. 잔디 교체 이전과 이후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소홀(疏忽)’과 ‘황홀(恍惚)’로 정의되지 않을까 싶다.

작년까지만 해도 코스에 들어서면 이래저래 주눅이 들어 코스 레이아웃이나 주변 경관을 전혀 감상할 새가 없었다. 하지만 잔디를 교체한 이후에는 천혜의 주변 경관과 양탄자같은 페어웨이에 시선을 빼앗기는 여유를 짐짓 부릴 수가 있게 됐다.

3개 코스는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먼저 북코스는 마치 계곡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의 1번 홀(파5)로 시작하는 ‘숲의 모험’이 테마다. 때론 완만한 구릉과 계곡을 넘나 들다가 때로는 호수와 폭포를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넓은 평원을 만나 여유를 찾고선 고지에 올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게 하는 코스다.

동코스는 업앤다운이 있지만 공격적인 벙커와 호수, 드라마틱한 언듈레이션 등 전략적 요소들이 많아 극적인 재미가 가미된 코스다. 한 마디로 도전보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코스로 보면 된다.

서코스는 숲을 헤치고 커다란 호수를 건너 높은 성에 이르는 영웅의 신화적 서사가 느껴지는 코스다. 길고 웅장한 홀들은 지중해 느낌을 주는 호수를 따라 배치됐다. 플레이어는 그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 당할 수 밖에 없다. 테크닉과 전략을 동시에 요하는 난도가 높은 코스다.

원용권 회장이 건축 설계와 전 세계 유명 건축물을 견학한 뒤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블랙스톤 이천 클럽하우스. 블랙스톤 이천

원용권 회장의 ‘현자의 돌’에서 얻은 인생철학 녹여
블랙스톤 이천과 블랙스톤 제주를 아우르는 블랙스톤리조트는 원용권 회장의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에서 영감을 얻은 ‘인생철학’과 자연을 향한 ‘경외심’을 근간으로 탄생했다.

크게 주목받지 않아 버려져 있다시피한 자연에 숨결을 불어 넣어 후대에 길이 남을 불멸의 걸작품인 골프장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단순히 만든 것에 그치지 않았다.

세계최대 반도체 트레이 제조사인 ㈜대원산업을 설립해 성장시킨 원 회장의 기업가 정신과 장인정신은 블랙스톤 제주와 블랙스톤 이천 전반에 걸쳐 오롯이 녹아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원 회장이 지향하는 리조트의 비전은 단순한 골프장이 아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인생과 우주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바람과 별을 느끼며 옛 추억 위에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안식처를 늘 꿈꿔 왔다. 나아가 잠시나마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삶을 통찰하고 귀한 인연을 맺는 교류의 터전, ‘참된 골프문화의 터전’을 구현하는 게 그의 일생 목표였다. 다시말해 자신의 꿈을 골프장에 접목시켰다고 보면 된다.

2005년 개장한 블랙스톤 제주는 그 첫 결실이었다. 이어 2010년 문을 연 블랙스톤 이천은 그의 철학이 더욱 정제된 형태로 구현됐다. 설계를 맡은 JMP 골프 디자인 그룹의 브라이언 코스텔로는 “코스는 만드는 게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라는 대명제 아래 부지의 나무·바위·지형을 그대로 살려 코스를 완성했다. 이는 ‘자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건축가’라는 원 회장의 평소 신념과 맞닿아 있다.

원 회장은 설계 철학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2년여 공사 기간에 직접 현장에 상주하며 매일 현장 감독을 했다. 특히 블랙스톤 이천 클럽하우스의 설계와 인테리어를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수많은 건축 서적과 해외 탐방으로 쌓은 식견을 바탕으로 스스로 완성한 것은 그의 장인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결론적으로 말해 블랙스톤은 원 회장의 ‘현자의돌’ 철학이 응집된 결과물이다. 자연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고 여기에 정성과 노력을 더해 세상에 없던 명작을 빚어낸 것이다. 현재는 그의 차남 원기룡 대표가 직접 경영을 이어받아 원 회장이 남긴 철학과 비전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천=정대균골프선임기자(golf5601@kmib.co.kr)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