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이 의료기기 ‘중간’ 도매상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자기 병원에 비싼 값으로 납품토록 해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사례가 만연한데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도매상에서 의료기기와 치료재료(치료에 사용되는 소모성 의료기기)를 받아 의료기관에 납품하는 ‘간접납품업체’(간납업체)의 거래에 불공정 행위가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특정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 A씨와 의료법인은 본인, 배우자, 자녀 등이 참여한 복잡한 지분 구조의 간납업체를 만든 뒤 특수관계인이 대표로 있는 병원과의 독점 거래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A씨와 의료법인은 전국에 자신과 배우자, 형제 등이 대표로 있는 병원 6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병원에 의료기기, 치료재료 등을 공급하려면 이들과 독점 거래하는 B간납업체를 통해야 한다.
B간납업체는 사실상 A씨와 그 배우자가 소유하고 있다. A씨와 그의 배우자는 각각 지분 90%와 10%를 보유한 홍보대행사를 갖고 있고, 이 홍보대행사는 B간납업체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보대행사와 B간납업체는 모두 A씨 병원에서 근무한 적 있는 측근들이 대표를 맡고 있다.
A씨는 이런 지분 구조와 측근 경영으로 지배하는 B간납업체를 통해 이들 병원 6곳에 의료기기, 치료재료를 독점 공급하고 수익을 편취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A씨는 B간납업체와 병원 6곳의 독점거래에서 나온 수익을 취하고 병원 6곳 운영 전반을 통제하면서, 사실상의 네트워크 병원의 개설과 운영을 금지한 의료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앞서 건보공단은 공익 제보에 따라 2023년 6월 행정조사를 벌였고, 같은 해 9월 경찰에 A씨 등을 의료법에 적시된 의료기관 이중개설 금지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그러나 경찰은 올해 3월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고, 건보공단은 이에 불복해 4월 수사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건보공단은 B간납업체의 거래로 얻은 이익을 의료법인이 아닌 A씨가 취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어진 검찰 수사에서도 불기소 처분이 나왔다.
김 의원 측은 B간납업체가 싸게 사들인 치료재료를 비싸게 산 것처럼 꾸며내 건보공단에 비용을 청구한 정황도 있다고 의심했다.
B간납업체는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영업이익률이 평균 23%에 달하는데, 이는 다른 업체의 10배 수준이다. 복지부가 2022년 시행한 간납업체 유통시장 문제점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납업체 평균 영업이익률은 5.6% 정도이고, 업계에서도 3% 내외를 통상적인 영업이익률로 본다. 동일한 사업 구조를 갖고 있는데도 일반 간납업체와 B간납업체 사이에 영업이익률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게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병원장과 의료재단이 본인, 가족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을 이용하여 편법적인 리베이트 거래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며 “게다가 의료재단을 통해 네트워크 병원들의 운영을 장악하고 불법적 운영으로 건보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22년 복지부 실태조사에서 약 15%가량의 간납업체가 병원과 특수관계인인 것으로 밝혀졌으나, 문제가 있는 병원과 업체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다”며 “실태를 파악하고 유관기관들과 협조해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