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 처방, 국민 생명과 직결…타협·양보 대상 안돼”

입력 2025-10-13 05:10 수정 2025-10-13 05:10

최근 의약품의 성분명 처방 의무화 및 처벌 규정 입법 추진을 둘러싸고 의료계와 약사들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약사들은 “반복되는 의약품 품절과 공급 불안정을 해소하고 의료비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며 입법화에 적극 찬성한다. 반면 의사들은 “대체 조제가 광범위하게 확산돼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을 해칠 수 있으며 의사의 처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사회는 자체 대응 기구인 ‘성분명 처방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반대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위 사진)은 13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성분명 처방 주장은 국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이자 의사 처방권을 무력화함으로써 의사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정책”이라며 의사 면허를 걸고 끝까지 저항할 것을 천명했다. 황 회장은 “모든 약이 똑같은 약은 아니다. 환자들에게 맞는 약은 따로 있으며 80~125%라는 ‘생동성(생물학적 동등성) 허용 범위’는 실제 임상에서는 많은 효과의 차이를 유발하고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환자 생명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의사들에게 성분명 처방 정책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황 회장과의 일문일답.

-성분명 처방이 뭔가.
“성분명 처방(Generic Prescribing)은 의사가 처방전에 특정 제약사의 상품명(Brand-name)이 아닌, 약의 주요 약리 작용을 하는 성분명(Generic Name)을 기재해 처방하는 방식이다. 예를들어 ‘아세트아미노펜 500㎎’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된 방식은 ‘타이레놀 500㎎’처럼 상품명 처방이다.”

-지금 왜 논란이 되고 있나.
“국회에 발의된 2개의 법안 때문이다. 하나는 의사의 처방약을 약사가 같은 성분의 다른 약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체조제 사후 통보 간소화’ 관련 약사법 개정안이다. 현행 약사법은 약사가 동일 성분·함량·제형의 의약품으로 대체 조제할 경우 의사에게 팩스나 전화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한 이번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앞으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업무 포털을 활용해 간소화된 방식으로 통보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약사가 처방전에 기재된 의약품을 생물학적 동등성이 인정된 품목으로 대체 조제할 때 환자에게 알리고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 치과의사에게 1일 이내에 통보해야 한다. 또 하나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이나 국가 필수약품 등에 대해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이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 ‘필수 의약품 성분명 처방 촉진’이 포함돼 있어 주로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입법화가 추진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대체 조제 사후 통보 간소화법을 우선 통과시킨 후 의약품 수급 불안정 해소를 명분으로 국가 필수 나 수급 불안정 약품에 한해 성분명 처방을 권고하는 방식으로 추진이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론 수급 불안정 의약품과 국가 필수약품을 규정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에서 지정하는 의약품에 한해 성분명 처방을 권고하거나 성분명 처방을 전면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가 보는 해당 법안의 문제점은 뭔가.
“약사법 개정안 관련해선 의사가 수급 불안정 의약품 처방 시 성분명을 기재토록 해 환자에게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고 하나, 의약품 수급 불안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지나치게 낮은 약가로 인한 생산 중단, 제약사의 원료 수급 문제 등이 근본 원인으로 이를 해결할 정책적 대안이 먼저 있어야 한다. 또 수급 불안정 의약품 지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대상 약품에 대한 확인도 어렵다. 아울러 관련 지정 및 관리, 유통 개선 조치, 긴급 명령 등 기준과 절차 대부분이 하위 법령에 위임하고 있어 과도한 위임 입법의 문제가 있다. 아주 쉽게 의약품 공급 문제 해결을 위해선 부족한 의약품을 심평원 전산 시스템에 등록하면 의사가 다른 약으로 대체해 처방 가능하다.
환자의 안전 및 의료의 질 저하도 우려된다. 동일 성분이라도 제형, 첨가제, 생물학적 동등성 차이 등으로 인해 임상적 효과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약사의 임의적 대체 조제로 최적의 치료 효과를 보장하기 어렵다. 국민 건강권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또 성분명 처방 의무화는 의사의 전문적인 판단과 처방권을 침해한다. 의약 분업의 기본 취지(의사는 진료·처방, 약사는 조제)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정책이다. 아울러 성분명 처방을 하지 않은 의사를 징역 또는 벌금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고 부당하다.”

황 회장은 “성분명으로 처방된 후 약국에서 어떤 제약사의 약으로 조제됐는지에 따라 약물 효과나 부작용에 차이가 발생할 경우 약화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약사회는 약제비 절감, 건강보험 재정 안정 등을 찬성 이유로 꼽는데.
“우리나라는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의 보험가와 오리지널 약의 가격 차이가 많지 않아 실질적인 재정 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 실제 2007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실시한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결과 총 약제비 절감 비율이 4.6%로 미미했다. 오히려 성분명 처방 부작용으로 인한 추가 의료비 부담 가능성이 있다. 병원원 내 조제 시 약국 건보료 감소로 건보 재정 절감에 더 크게 도움될 것이다. 처방에 상품명이 없어지면 리베이트 등 불투명한 제약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약사들은 주장하는데, 약사가 구하기 쉽거나 약가가 싼 제품을 선택하는 과정에 리베이트 문제는 오히려 약사에게 전가되며 혼탁해질 수 있다. 약국이 일반약도 판매하기 때문에 의약품 유통 구조상 이런 혼탁상은 더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약사들은 또 국민 편의성 강화, 환자 선택권 보장 및 경제적 부담 완화도 성분명 처방의 근거로 내세우는데.
“고령자나 만성질환자처럼 여러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이들은 변화에 민감하고 취약하다. 길게는 몇 년에 걸친 투약 효과를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으로 100% 예측할 수 없다.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도 우려된다. 성분명 처방 후 약사가 저가 제네릭으로 대체할 때 환자들이 ‘싼 약’에 대한 불신으로 약효가 떨어질 것이라는 심리적 부작용을 호소할 수 있으며 실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오리지널 약에 익숙했던 만성질환자 등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의료진에 대한 불신과 불필요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약화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에 의약품의 안전성 보다는 위험성이 커지게 된다.
국민 편의성 측면에선 병원에서 약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법적 책임성과 안전성 확보에 더 확실하다. 또 약사의 선택으로 처방이 이뤄지므로 환자가 선호하는 브랜드나 제형의 약을 처방받을 선택권 및 알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다. 환자가 약을 병원에서 받을지 약국에서 받으며 이중으로 비용을 지불할지 선택하게 하는 것이 환자의 선택권을 더 보장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성분명 처방 도입은 그간에도 몇차례 시도됐는데, 왜 실현 안됐나.
“2000년 의약 분업 이후 약사회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도입 논의가 있어왔고 2007년 정부 주도의 시범사업이 진행된 바도 있다. 이후 국회에 여러 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의료계의 강경한 반대와 사회적 합의 실패로 제도적 확산이 이어지지 못했다. 실현이 안된 이유로는 동일 성분이라도 제네릭 의약품의 품질이나 효과에 대한 불신과 안전성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 의사 처방권 훼손·약화 사고 책임 소재 불분명·의료의 질 저하 우려, 의사와 약사간 직역 분담과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인 점 등이 거론된다. 과거에는 주로 약가 절감이나 환자 선택권 보장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심화된 의약품 수급 불안정 및 품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라는 명분이 강조되고 있다.”

-해외 국가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성분명 처방을 의사 자율에 맡기는 나라는 25개국으로 많은 국가에서 의사 재량권을 보장하고 있다. 성분명 처방이 의무화된 국가는 13개국이다. 단 성분명 처방이 의무화된 국가도 성분명과 상품명을 병기(호주, 프랑스, 포르투갈)하거나 특정 품목 및 일정 비율만 성분명으로 처방하는 등 조건부(부분적) 의무 규정으로 시행하고 있다. 의사의 성분명 처방을 강제화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 규정이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 회장은 “제네릭 간 전환에 따른 혼란도 야기되는데, 특히 항암제나 항간질제, 면역 억제제 등 ‘좁은 치료역’을 가진 약물들의 경우 미세한 생체 이용률 차이 등으로 인해 다른 제네릭으로 교체될 때 환자 약물 효과가 변동되거나 부작용이 증가하는 임상적 문제가 발생해 특정 약물은 성분명 처방에서 제외하거나 엄격히 관리하는 국가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진국도 엄격한 심사를 거친 몇 개의 약물 중에서만 선택하게 하지, 한국처럼 성분에 100개 이상의 약물 중 아무것이나 약사가 조제하는 경우는 없다”고 부연했다. 국내외서 제형 변경, 복제약 사용, 생동성 시험 조작 등에 따른 부작용 발생과 그로 인한 소송 사례가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이 최근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방문해 성분명 처방 관련 의견서를 제출하는 장면. 뉴시스

-앞으로 대응 방향은.
“성분명 처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민 건강권 훼손과 문제점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설득에 나서고 어떠한 정책이 국민 건강에 도움될지 적극 알릴 예정이다. 특히 성분명 처방 주장은 의약 분업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이므로 이번 기회에 ‘의약분업 재평가’와 함께 환자가 약 조제 방법을 선택(병원 내 혹은 약국 이용)할 수 있는 ‘국민 선택분업’을 통해 국민 건강권 수호와 편의성 제고, 의료비 절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서울시의사회는 정부에 성분명 처방과 국민 선택분업 중 국민의 뜻을 물어 최종적으로 정책을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
황 회장은 “의사는 단 0.01%의 부작용 확률이라 하더라도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환자에 따라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성분명 처방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절대로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