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국적을 모두 보유한 복수국적자가 미국 공무원 취업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한국 국적 포기를 허가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이 복수국적자가 7년간 미국에 머문 기간이 19일에 불과한 점 등을 고려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나진이)는 복수국적자 A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국적이탈 신고 반려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 8월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005년 대한민국 국적 어머니와 미국 국적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A씨는 2015년 8월 한국에 입국해 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국제학교에 다녔다. A씨는 7년 후인 2022년 6월 미국으로 출국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국적이탈 신고서를 작성해 법무부에 접수했고 같은 해 7월 귀국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듬해 9월 외국 주소 요건 미비 등을 이유로 A씨의 신청을 반려했다. 이에 A씨는 법무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국적 이탈 신고서에 아버지가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지내는 주거지를 적었다며 “외국에 주소를 둬야 한다는 국적이탈 요건을 충족했는데도 법무부가 신고를 반려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국적이탈로 인해 침해되는 공익은 미미하지만, 자신의 국적이탈이 되지 않을 경우 미국 연방 공무원을 할 수 없는 등 직업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강조했다. 국적법에 따르면 복수국적자가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고 외국 국적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외국에 주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입국한 2015년 8월부터 국적이탈 신청을 위해 출국한 2022년 6월까지 미국에 체류한 기간이 총 19일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A씨는 대부분의 기간 국내에서 부모와 생활하는 등 국적이탈 신청 당시 실제 생활근거지는 한국이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적이탈의 요건인 ‘외국에 주소가 있는 경우’를 판단할 때는 실제 생활 근거가 어디인지, 국내 체류가 일시적·우연적 계기로 인한 것인지, 조만간 외국으로 복귀한다고 볼만한 객관적 사정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국적이탈 신고 당시 미국에 생활 근거를 두고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봤다.
법무부의 처분이 재량권 일탈·남용이라는 A씨의 주장 또한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외국 주소 보유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 법무부는 재량권을 행사할 여지 없이 그 수리를 거부해야 하므로 국적이탈 신고 반려 처분은 법무부의 재량을 허용하지 않는 기속행위로 봐야 한다”고 했다.
한편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병역의무 대상자 중 1만8434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이 중 6281명은 A씨처럼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국적이탈’이었다. 국적 포기 후 가장 많이 취득한 국적은 미국(66.4%)이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