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아줘도 들은 체도 안해”…한민수 “약속 지킬게요”

입력 2025-10-11 18:17 수정 2025-10-12 00:07
한 강북구민이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미아사거리역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한웅희 기자

60년 넘게 강북구에 사는 김모(88)씨는 11일 집으로 가던 길에 우연히 ‘한민수의 현장민원실’을 마주쳤다. 김씨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미아사거리역 에스컬레이터가 몇 년째 설치되지 않고 있다”며 “기동민, 박용진 전 의원 다 해준다 해놓고 안 해줬다. 구청장도 뽑아줘봤자 들은 체도 안 한다”고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한 의원은 “약속 꼭 지키겠다”며 김씨에게 명함과 음료를 건넸다. 한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미아사거리역 6번 출구에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김씨는 “줬으니까 먹고 가야지”하며 받은 음료를 들이켰다. 이어 한 의원을 향해 “진보성향이 강하단 이유로 민주당 의원들이 (강북)지역 민심에 소홀한 경향이 있다”며 “그만큼 더 민심을 잘 청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선 자리를 떴다.

이날 ‘한민수의 현장민원실’은 서울시 강북구 미아사거리역 와이스퀘어 건물 앞에서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진행됐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현장민원실은 격주로 매달 2번째 4번째 토요일, 미아사거리역 혹은 삼양사거리 앞에서 3시간 동안 진행돼 왔다.

11일 서울 강북구 미아사거리역 인근에 차려진 '한민수의 현장민원실'에서 한 의원이 지역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한웅희 기자

이날 현장민원실에 놓인 4칸의 시민용 의자는 빌 틈이 없었다. 지역 주민들은 때로는 애로를 호소하고, 담소를 나누는가 하면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모(65)씨는 현장민원실에서 “자산 산정 과정 중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초연금 수급에서 탈락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최치효 강북구의원이 “자산 매매 내역을 뽑아 구청에 제출하라”며 절차를 안내했다. 최씨는 “갑작스러운 연금 탈락으로 생계가 힘들어졌는데 해결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 속이 시원하다”며 만족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12년차 강북구민 차불휘(29)씨는 이날 한 의원 측에 ‘아동및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얼굴이나 신체 일부분만 합성한 가상의 성적 합성물도 아청법상 처벌 범위에 포함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올해 2월부터 민주당의 ‘온라인 정책참여단’에 참여했던 차씨는 참여단이나 개인이 의원실에 정책을 제안해도 반영되지 않는 현실에 현장 민원실을 찾았다.

차씨는 “대면해 (정책을)제안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느꼈다. 그런 점에서 현장민원실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이 검찰·사법개혁에만 관심 있는 것 같다”며 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2030 남성 중엔 게임이나 영상물, 애니메이션 관련 규제가 지나쳐 문화예술을 탄압한다는 의견이 나온다”며 “그러나 의원들이 문화예술 관련 실태와 법안에 대해 잘 모른다. 법안을 만드는 의원실 보좌관도 문화예술에서 소비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모르더라”고 짚었다.

한 의원이 현장민원실에서 지역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웅희 기자

현장민원실은 지역 현안 민원을 청취하기도 하지만 민주당에 대한 민심을 피부로 느끼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현장민원실을 찾은 민주당 대의원 문모(52)씨는 한 의원 측에 ‘개혁 완수’를 주문했다. 문씨는 “당원과 주민이 원하는 건 속도감 있고 효능감 있는 ‘가시적’ 결과”라며 “계엄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다 국민 알기를 ‘개돼지’로 아는 정권이 다시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얘기를 추석 때 많이들 했다”고 말했다.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당부도 이어졌다. 문씨는 “지역민에게 필요한 건 서울시장의 행정력인데 민주당 승리가 쉽지 않아 보인다”며 당 차원의 노력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현장민원실을 두고 “정해진 날짜에 꾸준히 계속하니 ‘얼마나 하겠어’ 하며 냉소적이었던 사람에게도 진정성이 통하는 것 같다”며 “(개별 의원뿐 아니라 지선에서도) 주민이 좋아하는 현장형 소통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 의원은 지난 8월 정청래 민주당 대표 취임 후 당대표 비서실장으로 발탁됐음에도 현장민원실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한 의원은 “지역민께서 이런 현장민원실은 처음 보신다더라”며 “앞으로도 꾸준히 지역 유권자의 말씀을 하나하나 새겨듣되,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겠다. 해낼 수 있는 약속만을 유권자들께 드리겠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민원실을 끝까지 지킨 하윤서(21)씨는 “정 대표 지역구인 마포구에 사는데 비서실장이 멋있어서 응원차 왔다”며 “당대표를 잘 보좌해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분의 의견도 잘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