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진정제 졸피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제, 식욕억제제 등 주요 마약류 의약품을 여러 병원을 돌며 대량으로 처방받는 이른바 ‘마약 쇼핑’ 행태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근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성인 ADHD 환자가 약물 처방량의 폭증으로 이어지고 있어 의료 현장의 철저한 감시와 오남용 방지 시스템의 정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지난 6월까지 수면진정제 졸피뎀, ADHD 치료제(메틸페니데이트), 식욕억제제(펜터민 등) 3가지 마약류 성분을 처방받은 상위 20명은 평균 수천 정에 달하는 약을 처방받았다. 이들 대부분이 복수의 의료기관을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ADHD 치료제 상위 20명은 총 32개 의료기관을 돌며 11만2059정을, 식욕억제제의 경우 60개 기관에서 11만1889정을 처방받아 두 성분 모두 1인당 평균 5000정을 넘겼다. 졸피뎀은 197개 의료기관에서 7만4694정이 처방돼 ‘마약 쇼핑’이 가장 심각했다. 졸피뎀의 경우 10개 이상 병원을 방문한 환자가 5명, 3개 이상은 13명에 달했다. 한 환자는 56개 병원을 오가며 9332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현상은 성인 ADHD 환자 급증과도 맞물린다. 보건복지위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ADHD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6만334명으로, 2020년(7만9244명) 대비 229% 급증했다. 같은 기간 총 진료비 역시 652억8242만원에서 2402억831만원으로 268% 뛰었다.
성인 환자만 놓고 보면 더욱 심각하다. 20세 이상 ADHD 진료 인원은 2020년 2만5297명에서 지난해 12만2614명으로 4.85배(385%) 늘어 사상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30대 여성은 2325명에서 2만624명으로 8.87배(787%), 진료비는 17억8827만원에서 2024년 195억2979만원으로 10.92배(992%) 늘며 압도적인 증가 폭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연령별 환자 수는 10대가 9만2704명(35.6%)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는 20대(6만5927명, 25.3%), 10세 미만(4만5016명, 17.3%), 30대(4만679명, 15.6%) 순이다.
전문가들은 성인 ADHD 환자 증가의 배경에 ‘자기진단 문화’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 과잉, 그리고 약물 접근성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특히 집중력 향상 효과로 알려진 ADHD 치료제가 피로 회복이나 업무 효율 향상 용도로 사용되면서, 치료 목적을 벗어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의원에서는 진단 절차가 간소화되거나 처방 기준이 느슨해지면서 약물 남용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진숙 의원은 “지난 6월부터 시행된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개정안에 따라 의료기관 및 약국에서 마약류를 처방하는 경우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연계가 가능해진 만큼 제도가 의료현장에서 제대로 운영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졸피뎀·식욕억제제·ADHD 치료제는 의존성과 부작용이 높은 만큼 반복·과다 처방이 단순 치료 목적을 넘어서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