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의신 “한국과 일본에서 잊힌 자이니치를 기억하고 기록합니다”

입력 2025-10-09 10:48
재일교포 극작가,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정의신. (c)일본 신국립극장

“한국과 일본의 경계인 자이니치를 다룬 ‘야끼니꾸 드래곤’을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다시 올리게 돼 뜻깊습니다.”

지난 7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이 개막한 뒤 만난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은 “그동안 자이니치의 이야기를 희곡에 조금씩 담긴 했지만 작정하고 쓴 것은 2008년 ‘야끼니꾸 드래곤’이 처음이었다. 한국에선든 일본에서든 여전히 자이니치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이 작품을 통해 많이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자이니치(在日)는 일본에서 자이니치 코리안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재일교포에 해당한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생활고 탓에 일본으로 건너간 노동자와 1940년 이후 태평양전쟁기에 강제 징병된 군인과 징용 노동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재일교포 2.5세대인 정의신 역시 할아버지가 식민지 시절 노동자로 일본에 왔다. 그의 할아버지는 헌병으로 일본군 생활을 한 아들(정의신의 아버지) 때문에 해방 이후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자이니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야끼니꾸 드래곤’에는 태평양전쟁, 제주 4.3 사건, 재일한국인 법적 지위 협정, 재일교포 북송 사건 등 한국과 일본을 관통하는 근현대사 뒤편에서 희생양이 된 자이니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야끼니꾸 드래곤’을 2018년 영화화하면서 직접 감독까지 맡은 데 이어 소설로도 내놓을 만큼 애착을 드러냈다. 정의신은 “한일 양국에서 잊힌 자이니치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한다. 세대를 거듭하며 귀화 등으로 자이니치의 수가 점점 주는 상황에서 더더욱 사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지난 2008년 신국립극장과 서울 예술의전당의 공동제작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올해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다시 공연된다. (c)일본 신국립극장

정의신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극작가, 연출가, 시나리오작가다. 젊은 시절부터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사랑을 바라는 사람’ ‘피와 뼈’의 시나리오와 연극 ‘더 테라야마’의 희곡으로 각종 상을 받는 등 눈부신 활약을 했다. 한국에서는 2005년 영화 ‘피와 뼈’가 개봉된 데 이어 연극계에서 2006년 ‘행인두부의 마음’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과 2007년 ‘겨울 해바라기’가 잇따라 공연돼 호평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2008년 일본 신국립극장과 한국 예술의전당 합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후 거의 매년 그의 희곡이 한국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일부 작품은 그가 직접 연출을 맡기도 했다.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인 그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친숙한 일본(어) 극작가 겸 연출가라는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정의신은 “‘야끼니꾸 드래곤’이 처음 공연됐을 땐 자이니치 가족을 소재로 한 특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과 호주 등에서도 낭독 공연으로 읽혀져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면서 자이니치의 이야기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이나 이민자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보편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도쿄 신국립극장은 2007년 초연한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 2008년과 2011년 공연한 ‘야끼니꾸 드래곤’, 2012년 초연한 ‘스미레 미장원’을 묶어 2016년 ‘정의신 3부작’으로 묶어 다시 공연했었다. 당시 한일관계가 좋지 않고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판치는 상황에서 자이니치 이야기를 담은 ‘정의신 3부작’은 큰 울림을 줬다. 그는 “한국에선 2016년 ‘야끼니꾸 드래곤’이 공연되지 않았던 만큼 올해 14년 만에 다시 올라가는 것이 기쁘다”면서 “앞으로 ‘스미레 미장원’ 등 한국에서 공연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소개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식민지 시절 탄광 노동자로 일하다가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 노동자와 그 후손의 이야기는 그가 요즘 천착하고 있는 자이니치 관련 테마다. 1960년대 규수 지역 탄광 배경의 ‘스미레 미장원’을 썼던 그는 1942년 야마구치현 해저 탄광인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로 희생된 강제징용 조선 노동자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도쿄=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