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비가 내린 7일 경기도 용인의 한 가정. 소갈비찜 전복구이 송편 등 명절 음식이 정갈하게 놓인 밥상에서 서툰 한국어와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식탁을 둘러앉은 이들은 중국 베트남 멕시코 가나에서 온 청년들. 식사와 장소를 제공한 이는 한국인 부부였다. 해외여행도 갈 수 있는 황금연휴, 오랜만에 친척을 만나야 할 추석에 부부는 왜 외국 젊은이들을 집에 초대했을까.
부부가 유학생들을 초청하기로 마음먹은 건 지난달 중순에 올라온 교회 주보를 통해서였다. 남서울교회(화종부 목사)에 다니는 정선희 권사는 “10월 6~9일 중 하루, 중앙대 외국인 유학생을 가정에 초대할 가정을 모집한다”는 교회 소식을 본 순간 ‘우리 집이 해야겠다’ 결심한 뒤 곧바로 자원했다고. 그는 “내 집을 이웃에게 활짝 열고, 교제하는 게 성도의 삶”이라며 “남편도 여기에 흔쾌히 찬성했고, ‘엄마 아빠처럼 나이 많은 사람만 있으면 유학생들이 우리 집에 와서 지루해할 것’이란 말에 대학생인 아들도 기분 좋게 승낙했다”고 말했다.
짧게는 한 달 남짓, 길게는 일년 반 이상을 한국에서 생활했지만 유학생들은 이런 환대를 처음 받아본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온 웬티하안(21)씨.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그는 “아무래도 한국에선 대인관계가 고향보단 넓지 않다”며 “여기선 취미 생활도 등산이나 독서같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는 그는 “식사를 마친 뒤 다 같이 조물조물 약밥을 만들었던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멕시코인 곤잘로(22)씨는 “정성껏 준비해주신 한국 음식을 잊을 수 없다”면서도 “가장 감사한 건 가족끼리 함께하는 민족 명절에 우릴 불러주셨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중국에서 한국문화학을 전공 중인 동려아(가명·21)씨는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께 영상통화로 안부 연락을 드렸다”며 “부모님께서도 ‘한국 연휴 기간에 혼자 있지 않고 잘 지내는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고 했다.
중앙대 유학생들을 집으로 초청하는 가정은 정 권사네 외에도 세 가정이 더 있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요청한 가이드라인은 하나. “모임에서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정 권사는 “교회에서 전도보다 환대를 강조했다”며 “그저 타지에서 온 청년들이 긴 연휴 기간 잠시라도 외롭지 않았으면 했다”고 전했다.
문화로 하나되는 추석
서울 오륜교회(주경훈 목사)는 지난달 28일 추석을 앞두고 ‘연합 단합 화합’을 주제로 이주민 체육대회를 진행했다. 서울 강동구 동북고에서 열린 미니 올림픽엔 중국 일본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국적 이주민 200여명이 모였다. 오륜교회 성도 70명은 통역과 의료팀으로 행사를 밑받침했다.
교회는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서 또 다른 이주민들을 초청해 한국 문화 탐방 시간을 갖기도 했다. 오륜교회 한국어교실이 준비한 이날 행사엔 중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뉴질랜드에서 온 유학생과 이주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한복 차림으로 궁궐과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을 둘러본 뒤 해물파전과 수제비를 맛봤다. 비용은 교회에서 전액 부담했다.
백석대(총장 송기신)와 백석문화대(총장 이경직)는 지난 1일 충남 천안 백석대 캠퍼스 일대에서 유학생 대상 ‘추석맞이 문화 체험 행사’를 마련했다. ‘한복 체험’ ‘송편 만들기’ ‘윷놀이’ 등이 준비된 행사엔 중국 일본 베트남 몽골 캐나다 러시아 등 총 17개국 1800여명의 유학생이 참석했다. 이날 학교 측은 유학생들에게 즉석식품을 포함한 생필품도 함께 전달했다. 연휴 기간 캠퍼스 주변 식당들이 문을 닫는다는 걸 고려한 나눔이었다.
가려진 곳 찾아가는 따뜻한 명절
부산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는 ‘S(수영로)라이더’ 사역을 통해 이주민과 다문화·탈북민 가정, 홀몸노인 등 소외 이웃에게 명절 선물을 전하고 있다. 2020년 추석에 처음 시작된 S라이더는 수영로교회 성도들이 명절 음식과 선물을 직접 준비해 이웃에게 배달까지 하는 활동이다. 배달에 나서는 성도들은 100여명, 라이더들은 부산을 비롯해 경남 양산·김해까지 흩어져 명절마다 인사를 전하고 있다. 올 추석 배달은 지난 4일 진행됐다.
경기도 수원제일교회(김근영 목사)는 지난 4일 교회 인근 탈북민 가정을 집집마다 찾아 명절 선물과 난방비를 지원했다. 지원 대상은 탈북민 정착 지원 기관인 하나원과 교인들을 통해 찾았다. 교회 통일선교부 팀장인 박승배 안수집사는 “북에 남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홀로 명절을 보내는 탈북민이 적지 않다”며 “명절에 더 그리운 곳이 고향이다. 우리가 전하는 작은 관심이 이분들께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현성 박윤서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