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 주범’ 은행나무 열매를 없애라…서울 곳곳에서 총력전

입력 2025-10-08 00:01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가좌로 일대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를 청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유통상가 사거리부터 양남사거리 사이에 심어진 은행나무들에서는 예년과 달리 열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서대문구 홍제역 인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그나마 은행나무 열매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곳은 종로구 혜화로에서였다. 종로구청 공무원들은 경신중고등학교 언더우드기념관 인근에서 작업차에 올라타 은행나무 가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열매를 떨어트리기 위해서였다.

이런 광경이 펼쳐진 것은 은행나무 열매를 둘러싼 시민들의 민원 때문이었다. 은행나무 열매는 지독한 냄새 탓에 ‘가을의 불청객’으로 통하곤 한다. 이 때문에 매년 가을이면 서울 자치구들은 은행나무 열매와 사투를 벌이곤 한다.

서울 종로구 혜화로에서 작업자들이 은행나무 열매를 채취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8일 서울시에 따르면 25개 자치구는 ‘은행 열매 채취 기동반’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기동반은 매년 가을 고소작업차, 진동 수확기 등을 사용해 열매를 떨어트리는 일을 한다. 나무에 깔때기 모양의 그물을 씌워 열매가 한곳으로 모이게 하는 망을 설치하기도 한다.

알려졌다시피 은행나무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맺힌다. 겉만 봐선 암수 구분이 어려워 봄철에 개화 여부나, 가을철에 열매 결실을 확인해야 구별할 수 있다.

은행나무 열매 악취는 껍질에 포함된 비오볼(Bilobol)과 은행산이 원인이다. 곤충으로부터 씨앗을 보호하는 물질로 열매가 터지면 이 물질이 새어 나와 냄새가 난다.
서울 종로구 혜화로에서 작업자가 고소작업차에 올라타 은행나무 열매를 채취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23년 기준 서울시 내에 심어진 가로수 29만4668그루 가운데 은행나무는 10만2070그루(34.6%)에 달한다. 시는 악취를 유발하는 암나무를 줄이기 위해 수나무로 바꿔 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암나무는 2022년 약 2만8000그루에서 2023년 2만6510그루, 2024년 2만4811그루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시는 각 자치구에 열매 채취에 필요한 예산을 적게는 300만원 많게는 2000만원까지 편성해 지원한다. 또 채취방법과 도구 등도 지원한다.

송파구는 관내 2만3444그루의 가로수 중 은행나무가 절반 가까이인 1만901그루다. 이 중 2864그루가 열매를 맺는 암나무로 서울에서 가장 많다. 송파구는 지난달 22일부터 오는 11월까지 진동 수확기 등을 통해 열매를 회수할 예정이다. 진동 수확기는 1분당 약 800번의 진동을 나무에 줘 열매를 떨어트리는 기계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가좌로 일대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진동수확기를 통해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를 청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쯤되면 열매를 맺는 암나무를 모두 수나무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국립산림과학원은 2011년 어린잎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해 조기에 성별을 구별하는 ‘DNA 성감별 분석법’을 개발했다. 이 기술 덕분에 20년 가까이 기다리지 않고도 묘목 단계에서부터 수나무를 골라 심을 길이 열렸다. 하지만 이 기술이 곧바로 ‘암나무 제로(0)’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기술은 있지만 현실의 벽이 높기 때문이다. 자치구마다 보유한 암나무 수량과 가로수의 생육 상태가 제각각이고, 규격이 큰 나무를 교체하려면 시간과 비용, 난도 등이 급증한다. 보행 환경이나 도로 구조상 장비 진입이 어려운 곳도 많다.
서울 종로구 혜화로에서 작업자들이 인도를 통제한 뒤 은행나무 열매를 채취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여기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게 만드는 변수도 있다. 같은 암나무라도 해마다 일조량이나 영양 상태에 따라 열매를 맺지 않기도 해 예측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시는 암나무에 ‘표찰’을 부착해 이력을 관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해에 열매가 맺히는지를 확인해 교체 수요조사와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또 시는 인위적인 환경조성보다 암수 등 자연의 조화를 위해 보행밀도가 낮은 공간에 있는 암나무는 그대로 두되, 민원이 잦은 구간을 중심으로 수나무화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재개발·정비사업 등이 없는 구간은 교체 명분을 찾기 힘들다”며 “민원 다발 지점부터 순차적으로 교체하고 관리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