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지방에서 자란 딸이 직장을 찾아 서울로 떠난 지 어느덧 7년이 흘렀다. 그 사이 딸은 씩씩하게 직장생활에 잘 적응했고,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신혼집이었다. 서울 집값이 오죽 비싸던가. 딸은 전셋집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아파트 분양 광고를 보게 되었다.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가 대비 30% 싸게 분양한다는 것이다. 딸은 아빠의 도움을 받고 전세를 내주면 25평형은 충분히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아빠에게 연락했다.
아빠는 애지중지 키운 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사회경험이 부족한 딸의 말만 듣고 계약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서울로 가서 딸과 함께 분양사무실을 찾았는데, 분양사무실 관계자가 하는 말이 25평형은 이미 분양이 완료되었고, 30평형과 33평형만 남았단다. 그러나 남은 평형은 딸과 아빠가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아빠가 딸에게 ‘다음 기회를 보자’고 토닥이며 분양사무실을 나오는데, 호객행위를 하던 공인중개사가 부녀를 잡았다. 마침 아쉬웠던 차에 부녀는 공인중개사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공인중개사가 손님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온갖 호의를 베풀며 말한다. ‘25평형도 프리미엄만 좀 주면 살 수 있다’고. 이에 딸이 솔깃하자 아빠도 마지못해 계약을 허락했다.
부녀가 결정하면서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딸은 공인중개사가 내미는 여러 가지 서류에 서명하였고, 아빠가 매도인의 계좌로 계약금을 입금했다. 당시 딸이 서명한 서류는 매매예약약정서와 아파트전세계약서였는데, 정상적인 분양권 전매라면 매도인을 임대인, 딸을 임차인으로 하는 아파트전세계약서를 추가로 작성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부녀는 원하던 아파트를 샀다는 사실에 만족한 채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다. 현재 부녀는 이때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서명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얼마 후, 공인중개사가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매도인이 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딸은 매도인과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작성하고,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했다. 잠시 후, 공인중개사가 소개한 임차인과 아파트전세계약서도 작성했다. 그리고 며칠 만에 등기권리증이 나왔다. 부녀는 무사히 아파트 소유권을 취득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러나 부녀의 안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이어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이 아파트는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이 1년인데, 이를 위반했기 때문에 분양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일로 부녀는 경찰에서 참고인조사를 받고 분양권 전매 과정을 거짓 없이 사실대로 진술했다. 이 과정에서 부녀는 매도인과 딸이 작성한 전세계약서가 전매 제한 기간 내의 분양권 전매를 감추기 위한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매도인과 공인중개사는 주택법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국토교통부는 딸에게 분양권 취소 전 소명서 제출을 안내하였다. 부녀는 눈물을 머금으며 그들의 억울한 사정을 소명서에 담아 제출했다. 퇴직을 눈앞에 둔 아빠는 자신의 아픔보다 딸의 아픔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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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