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옹공스럽게 이르셨재”…전남 방언으로 쓴 마가복음

입력 2025-10-06 08:00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에서 나룻배를 탄 어부들이 낚시하는 모습. 호수 뒤로 헤르몬산과 골란고원이 보인다. 국민일보DB

“아따메 수고가 많으시요이. 거시기 인자부텀 저를 따라댕기셔야 쓰겄소. 지비들을 물괴기가 아니라 사램을 낚는 찐한 어부가 되게 해드릴텡게.”

인류사 한 획을 그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처럼 구성진 전남 방언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시인이자 목회자인 임의진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 총무의 신간 ‘마가복음 전남 방언’(대한기독교서회)은 이런 호기심에 부응하는 책이다. 전남 강진 출신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전남 지역에서 살고 있는 그는 ‘공동번역성서’(1977)와 ‘개역개정판 성경’(1998)을 전남 방언, 특히 해안 방언 중심으로 번역했다. 성경을 전남 방언으로 번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마가복음 전남 방언’ 저자 임의진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 총무 국민일보DB

저자가 이처럼 새로운 시도를 한 건 예수가 “생전 사용한 아람어가 갈릴리 지역의 변방 사투리”였기 때문이다. 예수가 자란 갈릴리 나사렛 등지에선 아람어가 널리 사용됐는데, 이는 예루살렘에서 사용하는 것과 다른 ‘갈릴리 방언’이라는 게 여러 전문가의 견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사용한 사례로는 마가복음 5장 41절의 ‘달리다굼’(탈리타 쿰·소녀여 일어나라)과 같은 책 15장 34절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등이 있다.

‘마가복음 전남 방언’에 실린 삽화 ‘어린이 축복’. 마가복음 10장 14~16절 말씀을 그렸다. 대한기독교서회 제공

예수의 주 활동 무대 중 하나가 당시 변방 지역인 갈릴리이고, 주로 민중에게 복음을 전한 것도 방언 번역 시도의 또 다른 이유다. 책에는 전라도 특유의 감탄사나 해학적 표현이 적잖게 반영됐다.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하늘로부터 나온 소리를 “아야, 니는 나가 젤로 사랑하는 아들잉게 나가 아조 겁나게 흡족해부러야”라고 표현하는 식이다.(막 1:9~11)

예수가 성전 파괴와 재난을 예언한 부분을 “요거슨 홍어 거시기만한 재난의 시작일 뿐이당게라”(막 13:8)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린 마지막 사명 역시 친근하게 표현했다. “예말이요, 성님 동상님덜. 인자부텀 온 천하에 댕김서 몽조리 만나는 사램들마다 그간 알캐드린 복음을 전하셔야 쓰겄소.”(막 16:15)


전남 방언 어휘 풀이를 매 쪽 하단에 수록한 것도 특징이다. 무언가를 말할 때 뭉뚱그려 쓰는 말인 ‘거시기’를 비롯해 ‘아이사까’(아니나 다를까) ‘옹공스럽다’(다정스럽다) ‘굉기하다’(공교롭다) ‘오구감탕시럽다’(매우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등 표준어 사용자에게 생경한 어휘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방언 번역의 가치를 해설한 내용도 담겼다. 민영진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는 추천사에서 “지배적 번역, 유일한 번역은 없다”며 “여러 번역을 읽으면서 성경 본문의 세계에 접근하는 데 있어 이 번역이 길잡이 구실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책 곳곳에는 민중미술가 홍성담 전정호 화백의 판화 작품도 실렸다. 오는 30일 광주에서는 북콘서트가, 다음 달 25일부터 12월 3일까지는 서울서 삽화 전시 및 북콘서트(이미지)가 열린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