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들의 챔프폭이 넓다.” (‘캐니언’ 김건부)
“팀원들이 베테랑이고 경험도 많다. 챔피언 풀이 다양하고 집중력도 좋다.” (‘듀로’ 주민규)
지난 28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2025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최종 결승전에서 한화생명e스포츠를 3대 1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젠지 선수단은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팀의 최고 강점으로 넓은 챔피언 폭을 꼽았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2025 LoL KeSPA컵과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e스포츠 월드컵(EWC)까지 포함하면 젠지 선수단이 올해 쓴 챔피언 가짓수는 포지션별로 20개가 넘는다. 탑 26개·정글 22개·미드 26개·원딜 20개·서포터 21개. 밴픽이 일종의 그림 그리기라면, 젠지의 팔레트가 가장 크고 화려하고 다채롭다.
젠지의 강점은 피어리스 드래프트와 다전제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시리즈 후반으로 갈수록 쓸 수 있는 패가 적어지는 환경에서 이들은 상대보다 더 많은 성격의 조합을 고려할 수 있고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 또한 선수 한 명의 챔피언 폭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선수 전원이 2페이즈 픽의 부담을 나눌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연초 LCK컵 결승전에서 한화생명에 2대 3 패배를 당한 뒤로, 지난달 LCK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KT 롤스터에 2대 3 패배를 당하기 전까지 젠지는 늘 5세트에서 자신들의 강점을 살려서 이겨왔다.
젠지는 6월 부산에서 열린 로드 투 MSI 3라운드 경기(MSI 1시드 결정전)에서 패패승승승을 거뒀다. 5세트, 아지르·탈리야·아리·라이즈·사일러스·오로라·요네·트페가 소진되고 갈리오·빅토르·애니·오리아나·아칼리가 추가로 밴 된 상황. 레드 사이드에서 5픽으로 ‘쵸비’ 정지훈이 조이를 골라 1킬 1데스 10어시스트로 솔로 AP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밴쿠버에서는 바텀 듀오가 궂은 일을 도맡았다. 애니원스 레전드(AL)와의 2025 MSI 상위 브래킷 2라운드 경기도 5세트까지 펼쳐진 혈전이었다. 이번엔 바텀 듀오가 1페이즈에서 카밀·세주아니·라이즈를 뽑을 수 있게 상체를 밀어준 뒤 2페이즈에서 자야와 블리츠크랭크로 조합을 완성했다. 4세트까지 치러 티어 픽 대부분이 소진된 상황인 데다가 양 팀이 서로 바텀에 밴 카드를 집중해 칼리스타·루시안·제리·징크스, 레오나·엘리스·레나타까지 추가로 금지된 채였지만 각자의 시그니처 픽을 꺼내 팀 승리를 견인했다.
T1과의 MSI 결승 진출전 5세트 역시 바텀 듀오가 1페이즈 픽을 상체에 몰아주면서 오로라·니달리·레넥톤의 강력한 조합 구성을 도왔다. 티어 픽 소진과 함께 직스·케이틀린·바루스가 추가로 밴 되자 ‘룰러’ 박재혁과 주민규는 징크스·탐 켄치로 선회했다. 해당 게임은 박재혁이 7킬 2어시스트로 ‘룰러 엔딩’을 썼다. 이어지는 결승전 재대결에서는 주민규가 레드 5픽 파이크로 점을 찍으면서 젠지의 MSI 백투백 우승을 만들어냈다.
EWC부터는 다시 상체가 어려운 일을 맡았다. MSI의 리턴 매치이기도 했던 AL과의 결승전 5세트에서 젠지는 당시 OP 픽이었던 스카너를 1픽으로 가져가고, 바텀 듀오(자야·레나타)까지 구성한 뒤 밴픽 1페이즈를 마쳤다. 이어 2페이즈에서 정지훈과 기인’ 김기인이 각각 트페와 카밀을 뽑았고, 결국 정지훈이 라인전에서 ‘크렘’ 린 젠(사일러스)을 누른 게 젠지의 승리 초석이 됐다.
LCK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KT에 혼쭐이 난 젠지는 이어지는 패자조 3라운드 T1전에서 다시 5세트 5픽의 맛을 살려 구사일생에 성공했다. 정지훈이 조커 픽 벡스를 골라 오른·녹턴·라칸의 돌진 조합 완성도를 높였다. 그는 해당 게임에서 10킬 7어시스트로 맹활약을 펼치면서 팀을 결승 진출전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올해 젠지는 선수단의 넓은 챔피언 폭을 살려서 시리즈 후반부로 갈수록 밴픽에서 우위를 점하는 상황을 여러 차례 연출해냈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LoL 월드 챔피언십뿐. 이들은 지난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색다른 챔피언과 조합을 꺼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