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제’ 해외에선 “생산성 높아져” “오히려 더 피곤”

입력 2025-10-07 10:00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이미지

이재명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주 4.5일 근무제’를 두고 노동시간 경감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와 생산성 저하에 따른 기업 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엇갈린다. 고용노동부가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한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안에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법과 주 4.5일제 지원 사업을 마련한 뒤 2027년 이후 주 4.5일제 확산을 위한 본격적 논의에 돌입할 예정이다.

주 4.5일제 방식으로는 금요일 오후를 쉬거나 반일만 근무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평균인 1742시간보다 130시간가량 많다. 한국 근로시간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지만 아직 OECD 38개국 중 6번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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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근로시간이 긴 한국이지만 아직 주 4.5일제의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2일 공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주 4.5일제에 대해 찬성이 32%, 반대가 63%였다.

해외선 주 4일제 실험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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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감축은 한국에서만 나오는 얘기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노동시간 감축이 워라밸과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이 다수 진행돼왔다. 이미 킥스타터, 파나소닉, 스레드업 등 해외 기업이 다양한 형태로 주 4일제를 도입했다.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은 지난 6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인공지능(AI) 도입으로 높아진 생산성을 노동시간 단축으로 돌려줘야 한다며 주 4일, 32시간 근무를 주장했다.

주 4일제를 긍정 평가하는 쪽은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업무 집중력 향상으로 오히려 생산성 증대 효과가 있다고 본다.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과 근로자들 사이에선 짧은 근무 시간이 번아웃을 줄이고 이직률을 낮춘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줄리엣 쇼어 교수와 연구팀은 2022년부터 주 4일 근무제에 대한 연구를 전 세계 245개 조직과 8700명 직원을 상대로 진행했다. 쇼어 교수는 장기간의 연구 결과를 담은 저서 ‘Four Days a Week’(주 4일 근무)를 지난 6월 출간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 4일 근무제를 경험한 직원들의 69%가 번아웃 감소를 경험했고, 42%는 정신 건강이 향상됐으며 37%는 신체 건강이 개선됐다. 참가자의 13%는 더 많은 월급을 준다고 해도 5일 근무 체제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주 4일제 실험에 참가했던 기업 중 10% 미만인 20개 기업 만이 주 4일 근무제를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쇼어 교수는 “주 4일제로 근무 시간을 20% 줄여도 성과를 100%로 유지할 수 있다”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흔한 방법은 회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업무 방식과 절차를 재편하는 식으로 근무 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환경컨설팅 업체 ‘타일러 그랜지’는 주 4일제 시행 후 생산성은 22% 증가했고 구직 신청은 88% 급증했다. 구직 시장에서 양질의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주 4일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업무 강도 높아져” 반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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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주 4일제가 항상 긍정적 효과를 불러오는 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업무량은 동일하면서 근무 시간만 줄어 오히려 업무 마감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과 피로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들과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직 등의 경우 고객 불만이 늘어나고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영국 레딩대 헨리 비즈니스 스쿨 벤저민 레이커 교수는 포브스 기고문에서 “5일 근무를 4일로 압축하면 더 강도 높은 업무 환경으로 이어질 수 있고, 더 짧은 시간에 마감일을 맞춰야 해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4일 근무로 오히려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짧은 근무 시간을 만회하려 근무 시간 외에도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하는 등 업무를 해야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BBC에 따르면 영국의 한 산업용품 업체 ‘올캡’은 2022년 6월 격주에 하루씩 추가로 쉬는 근무제를 선택했는데 2개월 만에 실험을 중단했다. 고객사들이 제조 및 건설 부품을 계속적으로 주문하고 배송이 이뤄져야 하는 근무 형태 때문에 현장에 항상 인력이 필요했고 추가 휴일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던 것이다. 올캡 관계자는 “누군가 쉬면 책임이 동료에게 넘어가고, 관리직에게도 업무 압박이 가해졌다”며 “극도로 강도 높은 근무가 이어져 쉬는 날이 오면 이미 직원들이 탈진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결국 근무 시간 감축은 업종과 근무 형태에 따라 신중하게 도입해야 하며, 무엇보다 기업들이 직원 동기 부여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짐 하터 갤럽 수석연구원은 갤럽 홈페이지 글에서 “갤럽이 근로자 1만23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일 근무자의 전반적 웰빙 수준은 5일 근무자와 큰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번아웃 수준은 5일 근무자보다 높았다”며 “진짜 문제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직무에 몰입하지 못하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무일 수를 줄이는 것보다 직무 만족도를 높이고 직원들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