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유리천장 깬 성공회…사상 첫 여성 캔터베리 대주교 탄생

입력 2025-10-04 08:15 수정 2025-10-04 08:18
전 세계 성공회 신도 8500만명을 이끄는 영국 성공회(국교회)의 최고 성직자 '켄터베리 대주교'로 지명된 사라 멀랠리(63). AFP연합뉴스

대한성공회는 3일 영국 성공회가 약 15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최고 영적 지도자인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헨리 8세가 1534년 로마 교황청에서 독립해 성공회를 설립하고, 6세기 말 아우구스티누스가 초대 대주교로 임명된 이래 계속 이어져 온 남성 계승의 전통이 새롭게 쓰인 것이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3일(현지시간) 사라 멀랠리(63) 런던 주교를 제106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지명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전 세계 약 8500만 신자가 속한 성공회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이자 일치의 상징이다. 성공회의 최고 수장은 영국 국왕이지만, 캔터베리 대주교는 독립적인 지역 교회들의 연합체 안에서 ‘동등자 중 으뜸’으로 존중받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대한성공회 역시 1993년 독립 관구가 된 후 완전한 자치권을 행사하며, 캔터베리 대주교와 동등한 교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멀랠리 신임 대주교는 캔터베리 대성당 연설을 통해 “그동안 영국 국교회가 모든 형태의 권력 남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모든 사람을 위한 안전과 복지 문화를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1962년생인 멀랠리 대주교는 간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1999년 역대 최연소 잉글랜드 수석간호관을 역임했다. 16세에 기독교인이 된 후 2002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2018년부터 첫 여성 런던 주교로 재임해왔다. 그는 동성 커플 축복을 지지하는 등 성공회 내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임명은 아동 학대 은폐 스캔들로 지난해 11월 사임한 저스틴 웰비 전임 대주교의 후속 인선이다. 2003년 임명된 웰비 전 대주교는 수십 년간 이어진 아동 성 학대 의혹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비판 속에 물러났지만 10년 전 여성도 대주교가 될 수 있도록 교칙을 변경해 멀랠리 대주교의 임명에 길을 열어줬다.

멀랠리 대주교의 공식 취임은 2026년 1월 선출 확인 의식을 거친 후, 같은해 3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열리는 승좌식을 통해 직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대한성공회는 박동신 의장주교 명의의 공식 입장을 통해 이번 선출을 환영했다. 대한성공회는 “성공회 공동체의 새로운 여성 리더십이 가져올 변화를 기대한다”며 “이번 역사적 선출이 공동체 전체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멀랠리 대주교의 리더십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