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가 유행”…사치품 열풍에 ‘진짜 모피’까지 뜬다

입력 2025-10-07 00:00
퍼 자켓을 입은 할리우드 스타 켄달 제너. 인스타그램 캡처

서울에 사는 직장인 정모(32)씨는 요즘 모피 재킷을 눈여겨보고 있다. 과거엔 ‘과하게’ 느껴져 입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최근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이 모피 제품을 입은 모습이 하나둘씩 보이면서 관심이 생겼다. 정씨는 “명품 가방과 주얼리 등을 구입하면서 비싼 가격에 무뎌진 것 같다”며 “다만 아직 모피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 큰돈을 쓰고도 눈치보며 입어야할까봐 고민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때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던 모피가 ‘과시소비’ 풍조 속에 재주목받고 있다. 특히 과거엔 비싼 가격 때문에 중년층 이상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20대에서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 고객이 백화점에서 모피 재킷을 고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신세계백화점 모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나 증가했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을 포함한 백화점 3사 모두 올해 모피 매출이 지난해보다 늘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이 기간 백화점에서 20대 모피 매출은 전년 대비 세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롯데백화점은 100%, 신세계백화점은 110%, 현대백화점은 114.9% 각각 증가했다. 30대 모피 매출 역시 백화점 3사에서 20~30%씩 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물 학대나 착취 등을 이유로 모피 반대 운동이 열기를 띠었다. 이에 패션업계도 “동물 모피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등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명품 소비 열풍이 불면서 고가의 모피 제품 역시 유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피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여전한 탓에 온라인 명품 커뮤니티에선 ‘밍싫패’(밍크가 싫으면 패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모피 관련 글을 올릴 때 날선 반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 표현을 쓰는 것이다.

패션업계는 이 같은 수요에 발맞춰 모피 제품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프랑스 브랜드 ‘이자벨마랑’은 이번 가을·겨울 시즌 천연 모피 제품 가짓수를 전년 대비 7% 확대했다. ‘아떼 바네사브루노’도 지난달 모피 매출이 전년 대비 50% 늘어난 점을 감안해 모피 외투의 구색을 늘렸다.

W컨셉 인기 상품 '몰리몰리 페이크퍼 무스탕'. W컨셉 제공

고가의 천연 모피 제품뿐 아니라 인조 모피 수요도 뜨는 추세다.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패션플랫폼 W컨셉의 인조 모피 제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0% 신장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풍성하고 윤기 나는 털 코트, 과감한 주얼리, 선글라스 등 강렬하고 자신감 넘치는 화려한 스타일이 최근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과시소비 경향이 강해지면서 사치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명품이 처음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땐 가방을 위주로 판매가 이뤄졌으나, 최근엔 주얼리와 의류 등에서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명 ‘청담동 며느리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시 자체가 하나의 유행이 됐다”면서 “고가 사치품의 종류뿐 아니라 구매 연령층까지 확대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